“중국이 무서울 정도로 성장하고 있죠. 기술은 아직 앞서가고 있지만, 얼마 안 가 따라잡힐 수도 있습니다.”
이전 출입처였던 중후장대 기업 관계자들은 만나면 어김없이 이런 말을 전하곤 했다. 철강, 석유화학, 정유, 조선 등 업종을 막론하고 중국의 추격은 거셌다. 중국발 공급과잉으로 직격탄을 맞은 철강업계와 석유화학업계는 두말할 것도 없다. 국내 기업들은 스페셜티(고부가가치) 제품 등 기술 격차를 벌리고 있지만, 기술력에서도 중국은 급성장을 이루고 있다.
경계현 삼성전자 고문이 지난 12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교보빌딩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대회의실에서 열린 ‘민관합동 과학기술인재 유출방지 및 유치 TF 착수회의’ 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전자·반도체 업계를 취재하기 시작한 지 3주, ‘중국의 추격’은 이곳에서도 매섭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은 지난 2월 펴낸 ‘3대 게임체인저 분야 기술 수준 심층 분석’에서 지난해 기준 한국의 반도체 분야 기술 기초 역량이 모든 분야에서 중국에 추월당했다고 발표했다. 중국 가전업체 로보락은 국내 로봇청소기 시장에서 절반 이상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중국이 이토록 가파른 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이유는 국가 주도의 지원도 있겠지만, 미국의 반도체 수출 규제 등 대외적 상황도 한몫했을 것이다. 미 정부는 지난 4월 엔비디아의 저사양 인공지능(AI) 칩 ‘H20’의 수출을 중단한 바 있다. 이 당시 캠브리콘 등 중국 반도체 기업들은 H20보다 저렴한 ‘쓰위안 670 칩’ 등을 출시하며 대응하기도 했다. 잇단 수출 규제에 자국 제품으로 공백을 메꾸면서 산업을 성장시킨 것이다.
핵심 인력·기술 유출도 심각하다. 전직 삼성전자 부장 김 모씨는 삼성전자 반도체 기술을 중국 기업에 유출한 혐의로 2심에서 징역 6년과 벌금 2억원을 선고받았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산업기술 해외 유출 사건은 2019년 14건에서 2023년 23건으로 증가했다. 김씨는 중국 업체에 핵심 정보를 유출한 대가로 수백억원대의 금품을 수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눈앞의 보상에 인력과 기술이 중국으로 넘어가는 상황이다.
이를 막기 위해 한국의 고급 인재들의 유출을 막기 위한 경쟁력 확보가 시급하다. 단지 돈의 문제는 아니다. 고급 인력들의 역량이 충분히 발휘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경계현 삼성전자 고문(전 삼성전자 사장)은 지난 12일 ‘민관 합동 과학기술 인재 유출 방지 및 유지 TF 착수 회의’에서 “한국은 과학기술인에게 매력 없는 나라”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중국을 다시 추월하기 위해 고급 인재들을 한국으로 들어오게 만들 유인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명신 기자 si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