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마다 성격도, 외모도 다르다는 것은 알지만, 요즘 들어 절실히 느끼는 것은 부모들의 교육관이 너무 다르다는 점입니다. 초등학교 5학년인 제 아들은 교과 사교육은 집에서 하는 온라인 학습지가 전부이고, 나머지 시간에는 태권도와 수영 같은 운동을 하거나 학교 방과후 수업에서 큐브와 프라모델 같은 취미를 배웁니다. 그런데도 할 일이 많다며 늘상 투덜거립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 짠하기도 하고, 혹시 뭘 너무 많이 시키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됩니다. 중고등학교에 가면 공부가 더 힘들 텐데 벌써부터 염려가 됩니다.
그런데 제가 안일한 걸까요? 요즘은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7세 고시'라는 말이 유행합니다. 유명 영어학원 입학시험을 뜻하는데, 최근에는 그보다 더 앞서 영어유치원 입학시험을 준비하는 '4세 고시'까지 등장했다고 합니다. 수도권 영어유치원의 하루 평균 수업 시간은 5시간 24분이라고 하는데, 성인인 저도 견디기 힘든 시간을 어린아이들에게 강요하는 셈입니다.
영어유치원 비용은 매달 수백만 원에 이릅니다. 부모들이 이처럼 거금을 쓰는 이유는 결국 좋은 직업을 가져 돈을 많이 벌어야 행복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4세 고시부터 대학 입시까지 20년 가까이 이어지는 경쟁 속에서 부모는 허리가 휘고, 아이들은 '행복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교사들 또한 사교육에만 몰두하는 아이들을 보며 자괴감을 느낍니다. 결국 아무도 행복하지 않은 경쟁인 겁니다.
문제는 교육비 부담만이 아닙니다. 한국 사회 전체가 이 경쟁 구조에 갇혀 있다는 점입니다.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우울증 등 정신건강 관련 진료를 받은 0~6세 아동은 2만7268명에 달했습니다. 통계청 '사망 원인 통계'에 따르면 2023년 자살률은 인구 10만명당 28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두 배를 넘습니다. 특히 10대부터 30대까지의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이었습니다. 청년들이 삶을 포기하는 이유에는 이런 끝없는 줄 세우기 경쟁이 크게 작용하고 있지 않을까요.
국가인권위원회도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인권위는 25일 '7세 고시' 같은 극단적 조기 사교육을 줄이고, 아동의 건강권과 발달권을 보장하기 위해 유아 사교육 실태조사와 정보공개 의무화, 선행 사교육 제한, 놀이·탐색 중심의 교육 강화 등이 필요하다고 교육부에 권고했습니다.
행복은 먼 훗날의 보상이 아니라, 오늘의 작은 기쁨이 쌓여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이들의 오늘을 희생시키는 경쟁은 결국 누구에게도 행복을 주지 못합니다. 우리 사회가 아이들의 행복을 바란다면, 사교육 시장만 살찌우는 이 무한 경쟁을 멈추고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할 때입니다.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 분수대에서 어린이가 물장난을 치고 있다. (사진=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