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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이 세상을 구한다니
입력 : 2025-08-25 오후 2:30:27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의 인기가 뜨겁습니다. 정치인 안철수와 김문수가 "'케데헌'을 아냐, 모르냐"를 두고 설전을 벌였고, 소위 '아재'들 사이에서도 '케데헌'을 모르면 시대에 뒤처진 사람 취급을 받는 분위기입니다. 
 
'케데헌'은 6월20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입니다. K-POP 아이돌을 소재로 하면서 K-POP 음악을 활용한 최초의 해외 제작 뮤지컬 애니메이션입니다. 주인공은 걸그룹 '헌트리스'로, 무대에서는 아이돌이지만 공연이 끝나면 악마 사냥꾼으로 변신해 세계를 위협하는 초자연적 존재와 맞섭니다. 노래와 무대를 통해 사람들의 영혼을 지켜낸다는 설정은 K-POP 특유의 힘을 상징하는 듯 흥미롭습니다. 25일 현재 넷플릭스에서 누적 시청 수 1억8460만건을 기록하며 역대 영화 부문 2위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22일 '국내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광고 기반 무료 스트리밍 티비(FAST) 산업 인공지능(AI) 혁신 간담회'에서 류제명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차관이 "'케데헌'을 왜 우리가 만들지 못했을까, 아쉽다"는 발언을 했습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꼭 2년 전의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가 겹쳐 떠올랐습니다. 
 
당시 4만3000명의 청소년이 모인 국제행사는 땅조차 덜 매립된 부지에서 열렸습니다. 배수 불량으로 물웅덩이가 곳곳에 생겼고, 폭염 속에 온열 환자가 속출했습니다. 의료와 위생은 턱없이 부족했으며,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는 사태의 심각성을 제때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국제적 비난과 참가자들의 불만을 수습하기 위해 마무리 무대에 급히 오른 것은 뉴진스, NCT 드림, 있지(ITZY), 마마무 같은 K-POP 아이돌 그룹이었습니다. 정부와 어른들이 준비 부족과 무능으로 망쳐놓은 자리를, 이제 막 성인이 되었거나 여전히 10대였던 아이돌들이 떠맡아야 했습니다. 
 
이 대목은 '케데헌'의 줄거리와 묘하게 닮아 있습니다. 어른들이 막지 못한 '악귀'를 아이돌이 나서 물리치고 세상을 구한다는 이야기 말입니다. 픽션과 현실이 겹쳐 보이는 순간, 헛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웃음은 곧 씁쓸함으로 바뀝니다. 최근 그 중 하나였던 뉴진스가 활동 중단 위기에 놓인 상황이 자연스레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민희진 전 어도어 대표와 방시혁 하이브 의장 간의 경영권 분쟁으로 인해 결국 그룹의 활동까지 제약을 받는 모습은, 그들이 감당하기엔 지나치게 과한 짐을 떠안은 듯 보입니다.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는 K-POP 아이돌이 정작 자유롭게 활동하지 못하는 현실은 '케데헌'의 영웅적 판타지와는 너무도 대조적입니다. 
 
정부는 K-POP을 단순히 '육성해야 할 산업'이나 국가 브랜드 전략의 수단으로만 바라봐서는 안 됩니다. K-POP이 세계를 매혹시킨 힘은 정책이나 기획이 아니라, 아티스트들이 자유롭게 창의성을 펼칠 수 있는 환경에서 비롯됐습니다. 
 
K-POP은 정부가 만든 산물이 아니라 아티스트와 팬들이 함께 쌓아올린 문화입니다. 그러니 아이돌을 정책적 성과에 끼워 넣거나 도구처럼 이용하려 하기보다 그들의 자유와 창의성을 존중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K-POP도 한때의 유행을 넘어 더 크게 비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이돌이 세상을 구한다는 이야기는 스크린 속 판타지로 충분합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 (이미지=넷플릭스)
 
이지우 기자 jw@etomato.com
이지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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