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방과 후 집으로 돌아와 텔레비전을 켜면 가장 먼저 반겨주던 목소리가 있었습니다. 장편 애니메이션 <짱구는 못말려>에서 짱구를 호통치는 엄마 '봉미선', 그 옆에서 은근히 장단을 맞추는 아빠 '신형만'의 목소리인데요.
두 목소리가 만들어내는 부부의 대화는 단순한 애니메이션 속 연기를 넘어, 현실 속 부모와 다르지 않은 온기를 전해줬습니다. 덕분에 시청자들은 TV 앞에서 웃음을 터뜨리고, 때로는 현실의 가족을 떠올리며 위로를 받곤 했는데요. 그러나 우리에게 익숙한 부부의 목소리를 더는 들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26년 동안 짱구 엄마 봉미선을 연기해온 강희선 성우가 건강상의 이유로 이달 하차를 결정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짱구 아빠 신형만의 목소리를 맡아오던 오세홍 성우가 항암 치료 끝에 세상을 떠난 지 올해로 꼭 10년이 되는 해라, 이번 소식은 팬들에게 아쉬움을 더했습니다.
물론 다른 베테랑 성우들이 그 자리를 이어받아 열연을 펼친 덕분에 우리는 봉미선과 신형만을 다른 목소리로나마 접할 수 있게 됐지만, 문득문득 예전 목소리가 그리워지는 것까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여전히 방영 중인 애니메이션과 꾸준한 극장판 개봉 덕분에 요즘 아이들도 봉미선과 신형만, 그리고 그들의 목소리를 알고 있다고 합니다. 이제는 들을 수 없게 됐지만, 20년 가까이 희로애락을 표현하던 두 분의 목소리는 세대를 잇는 추억으로나마 남을 수 있길 간절히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