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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쯤이야'가 부른 2500만원 청구서
입력 : 2025-08-12 오후 2:19:00
"어린이입니다." 지하철 개찰구에서 안내 음성이 나왔습니다. 고개를 돌리니 그 카드를 찍고 들어간 사람은 성인 여성이었습니다. 주변 승객들은 잠시 쳐다보다 시선을 거뒀고, 제지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단속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잠깐의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이런 장면이 부정 승차가 얼마나 일상에 스며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얼마 전에는 더 심각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아버지 명의의 노인 우대 교통카드로 470차례 지하철을 무임승차한 30대 여성이 부가 운임과 지연 이자를 합쳐 2500만원을 물게 됐습니다. 서울교통공사가 진행한 부정 승차 소송 가운데 최고액입니다. 
 
노인 우대 교통카드는 단순한 무료 서비스가 아닙니다. 사회가 평생 기여한 노인, 장애인, 국가유공자의 이동권을 보장하는 사회적 약속입니다. 이를 타인의 명의로 쓰는 순간, 권리는 특권으로 변질되고 제도의 신뢰는 무너집니다. 
 
문제는 이 같은 부정 승차가 결코 예외적 사건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연평균 5만6000건이 적발됐고 부가 운임 규모는 26억원을 넘어섰습니다. 노인 우대 카드 남용, 어린이·청소년 요금 카드의 성인 사용 등 방식은 다양합니다. '몇백 원 차이'라는 가벼운 인식이 시민 전체의 재정 부담으로 이어집니다. 
 
단속의 한계도 뚜렷합니다. 단말기는 나이와 요금만 구분할 뿐 실제 사용자의 신분을 확인하지 못합니다. 인파가 몰리는 시간대에는 단속 인력이 의심 사례를 확인하기조차 어렵습니다. 사후에 CCTV로 적발하더라도 이미 수십·수백 건이 누적된 뒤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허점을 아는 일부 승객들은 제도를 악용합니다. 
 
서울교통공사는 최근 부정 승차에 대해 끝까지 책임을 묻겠다는 방침을 강화했습니다. 최근 3년간 130여건의 소송을 진행했고 판결 확정 뒤 강제집행까지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번 2500만원 판결은 단속이 허술하다는 인식에 경종을 울리는 사건입니다. 
 
무료 혜택은 공짜가 아닙니다. 누군가의 권리이자 모두의 부담이며, 신뢰 위에 서 있는 제도입니다. 그 신뢰를 무너뜨리는 '한 번쯤이야'가 쌓이면, 제도는 무너지고 혜택은 사라집니다. 2500만원 청구서는 그 대가가 결코 가볍지 않음을 보여주는 경고장입니다. 
 
지난 6월28일부터 서울·인천·경기 지하철을 탈 때 교통카드 기본요금이 기존 1400원에서 1550원으로 150원 인상됐다. (사진=뉴시스)
 
김주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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