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미국은 중국으로 수출되는 엔비디아의 저사양 AI 가속기 H20의 수출을 규제했다. 중국의 AI 굴기를 차단하기 위한 결단이었다. 고작 3개월. 미국은 제재를 풀었고, 이 기간 삼성전자의 2분기(4~6월)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반토막이 났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31일(현지시각) 백악관 루스벨트룸에서 행정명령에 서명한 후 펜을 건네고 있다. (사진=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말은 대체로 황당하고, 금세 뒤집힌다. TACO(Trump Always Chickens Out·트럼프는 항상 겁에 질려 도망간다)라는 별명은 트럼프 대통령의 변덕과 미 행정부의 정책 불확실성을 빗댄 조롱에 가깝다. 당장 지금도 농산물에 대한 한미 양국의 입장이 다른 상황이고, 그 중심에는 “한국이 자동차와 트럭, 농산물 등 미국산 제품을 받아들이기로 합의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입이 있다.
우리나라 반도체 업계는 원래 없던 관세를 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여기에 별도 투자는 덤이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의 관세를 낼지조차 아직 모른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치적은 그토록 자랑하더니, 정작 우리나라의 가장 중요한 사안에는 침묵했다. “한국이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게 대우받지 않을 것”이라는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의 말을 무작정 믿어야 할 뿐이다.
물론 우리나라 정부는 최혜국 대우를 거론하며 반도체업계에 확신을 주고 있다. 유럽연합(EU), 일본과 비슷한 수준의 보편관세. 식량 안보의 보전 등 합의 내용 면면을 살피면 정부가 고심한 흔적이 분명 엿보인다. 불확실성의 페달을 밟는 건 미국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약 2주일 후 트럼프 대통령과 한미 정상회담을 가질 예정이다. 러트닉 상무장관이 예고한 품목별 관세 발표 시점과 겹친다. 반도체 관세의 최종적인 결론은 정상회담 전후로 판가름이 날 듯싶다.
수용보다는 체념에 가깝겠지만, 반도체업계는 관세가 들이닥치는 것 자체는 어느 정도 받아들이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 몇몇과 이야기했을 때 그들이 일관되게 말한 것은 ‘공정한 경쟁’이었다. 다른 나라 기업과의 경쟁에서 기술이 아닌 관세로 밀리지 않도록 도와달라는 요구다. ‘최혜국 대우’라는 말이 어느 때보다도 간절한 시점이다.
안정훈 기자 ajh76063111@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