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옭아맸던 사법 리스크를 떨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뉴삼성’ 비전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 대법원 무죄 확정 판결 열흘여 만인 28일 테슬라와 22조원을 훌쩍 뛰어 넘는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공급 계약을 체결하는 낭보가 찾아 오면서부터다. 삼성전자는 경영상 비밀을 이유로 계약 상대를 함구했지만,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의 언급으로 고객사가 테슬라임이 알려졌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달 1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열린 경제6단체·기업인 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삼성전자의 이번 대규모 파운드리 수주는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많다. 가장 먼저 부진을 거듭하고 있는 삼성전자 실적 반등의 신호탄이 될 것이란 평가가 자리한다. 삼성전자는 올해 2분기 잠정실적 발표에서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반토막’이 났는데, 주 요인으로 파운드리 적자가 꼽혔었다. 수주 사업 특성상 고객 유치가 곧 실적으로 연결되는 만큼 이번 대형 수주가 삼성전자의 부진했던 실적과 파운드리의 존재감을 다시금 일으켜 세울 것이란 긍정 평가가 나온다.
수주액이 역대급이란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이번 22조7548억원이라는 수주액은 지난해 삼성전자 매출액 300조8709억원의 7.6%에 해당하는 규모다.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에서 단일 고객 기준 최대급 계약인 데다, 한국시장 전체를 봐도 전례를 찾기 힘든 대형 계약으로 평가된다. 또한 오는 2033년 12월31일까지 장기 계약으로 삼성전자는 8년 이상 굵직하고 안정적인 수익원 확보에도 성공했다. 특히 테슬라라는 주요 대형 고객과의 이같은 대규모 계약은 파운드리 첨단 공정의 수율을 두고 어느 정도 신뢰를 확보했다는 것이기에 양산성 확보에 따른 추가 대형 수주 기대감도 크다.
또한 이 회장이 사법 리스크를 벗고 경영에 온전히 복귀한 직후 나온 대규모 계약이라는 점에도 이목이 쏠린다. 특히 파운드리 사업부는 장기간의 침체로 ‘분사설’이 끊이지 않았는데, 이 회장의 흔들리지 않는 ‘뚝심’에 따른 쾌거라는 시각이 적지 않다. 앞서 이 회장은 지난 2019년 “파운드리 사업을 분사하는 데는 관심이 없다”고 밝히며, 파운드리 등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 2030년까지 133조원을 투자해 1위로 도약한다는 목표를 내세운 바 있다.
다만, 이 회장이 그려낼 ‘뉴삼성’은 이러한 실적 개선에만 그쳐선 안 된다. 실적 회복이 이 회장이 가장 먼저 풀어야 할 ‘최우선 숙제’임은 부인할 수 없지만, 인적 쇄신과 지배구조 개선도 ‘뉴삼성’에 당면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파운드리를 중심으로 한 실적 개선의 첫 단추를 채운 만큼, 이젠 내부 혁신의 첫 발걸음도 떼야 할 시점이다.
특히 그간 총수-미래전략실(컨트롤타워)-계열사 전문경영 삼각편대의 총수 중심 경영 구조에 익숙한 상태로 변화에 둔감해져 현재의 위기를 초래했다는 그룹 안팎의 지적이 있는 만큼 인적 쇄신은 필연적이다. 5년 전 ‘4세 경영 승계 포기’ 선언 이후 총수 중심의 경영 구조에서 ‘총수 없는 지속 가능한 경영 체계’를 수립하겠다는 과거의 약속을 이제는 구체화해야 한다. 이 회장의 결단 없이는 변화도 없다. 이 회장의 경영 복귀로 다시금 시동이 걸린 ‘뉴삼성’이 내외부 혁신을 바탕으로 국민에게 다시 사랑받는 기업으로 거듭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