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유지웅 기자] 서로 다른 시간 속에서 살던 소년과 소녀. 어긋난 시간 속에 서로의 몸이 바뀐 채 교감하던 두 사람은, 어느 날 해 질 무렵 아주 짧은 순간 동안 같은 시공간에서 마주합니다.
(사진=미디어캐슬)
이름을 전하려 하지만, 끝내 다 말하지 못한 채 다시 각자의 시간으로 돌아갑니다. 손에 남은 흔적과 마음속 느낌만으로 서로를 기억해보려 하지만, 얼굴과 이름은 점점 희미해져갑니다.
그로부터 시간이 흐릅니다. 잊은 채 살아가던 이들은 도쿄의 거리에서 다시 마주칩니다. 이유 없는 끌림에 걸음을 멈추고, 서로를 향해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너의 이름은…"
2016년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의 한 장면입니다. '내란 수괴'가 구속되고, 대선에서도 패배했지만, 여전히 그의 이름으로 불리는 국민의힘 주류 세력을 보며 이 영화가 떠올랐습니다.
정작 그들은 말합다. "친윤(친윤석열계) 아니다", "친윤 이제 없다", "계파 정치 타파"
하지만 "네가 이 세상 어디 있건 꼭 만나러 가겠다"는 영화 속 대사처럼, 한때는 관저 앞을 지켰습니다. 사랑인 줄 알았는데, 지금은 2평 남짓한 독방에서 선풍기 하나에 의지하고 있는 그를 더 이상 찾지도 않습니다.
'윤'이란 이름으로 공천을 받고, 조직을 장악하고, 권력을 배분했던 사람들. 그 이름으로 작동하던 권력구조는 여전히 건재합니다. 오히려 '대여 투쟁'이란 기치 아래 더 강경하고 당당해졌습니다.
앞으로 이름은 바뀔 수 있습니다. '윤'이란 글자 하나를 지우고, 다른 표지를 붙이겠죠. 그러나 정치 노선도 신념도 없이 이름에 묻은 권력만 좇는 구조는 그대로 남습니다.
권력을 나눠 가진 사람들이 만들어낸 생태계. 그게 바로 '친윤'입니다.
지도자는 사라지고 이름만 남은 당, 정권이 무너진 국민의힘에 묻습니다.
"너의 이름은?"
유지웅 기자 wisema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