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디지털교과서(AIDT)는 단순히 교과 내용을 전자책에 담은 수준을 넘어 학생 맞춤형 학습과 교사의 수업 설계까지 지원하는 새로운 교육 플랫폼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 국회에서 AI 교과서의 법적 지위를 정식 '교과서'가 아닌 '교육자료'로 격하하는 법안이 상정되면서 정책의 방향성에 대한 논란이 커지고 있습니다. AI 기술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지만 그것을 어떻게 교육 현장에 접목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보다 섬세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찬성하는 측은 AI 교과서가 수업의 질을 높이고, 학생 개개인의 학습 수준에 맞는 피드백을 가능하게 하며, 교사와 학생 간의 정서적 소통까지 돕는 도구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특히 '오늘의 기분 표시하기' 기능이나 실시간 학습 분석 기능 등은 종이 교과서로는 구현하기 어려운 장점입니다. 교사들은 이를 활용해 정량평가를 보다 효율적으로 수행하고, 학생들의 개별 학습 상황을 정교하게 파악할 수 있다는 반응도 보이고 있습니다. 국가 차원에서도 AI 인재 양성이 주요 국정 과제인 만큼 공교육에 AI 기반 교과서가 정착하는 것은 정책적 일관성과도 연결됩니다.
반면 현장의 목소리는 결코 낙관적이지만은 않습니다. 일부 초등학교에서는 태블릿PC가 40대에 불과한 상황에서 1000명이 넘는 학생이 수업을 듣고 있으며 교실 안에서조차 와이파이가 원활하지 않아 '로그인 튕김' 현상이 수업을 방해하고 있다는 증언도 있습니다. AIDT 활용 수업에서 기술 문제로 식은땀을 흘리는 교사들의 사례는 현실을 보여줍니다. 기기 보급률은 지역마다 편차가 크고, 인프라 격차는 교육 격차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기술은 앞서가고 있지만 현장은 아직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AI 교과서의 성패는 결국 '기술'이 아니라 '사람'에게 달려 있습니다. 학생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교사가 얼마나 적극적으로 활용하느냐가 관건입니다. 이를 위해선 먼저 인프라부터 확실히 갖춰야 합니다. 최소한의 하드웨어가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제아무리 좋은 디지털 콘텐츠를 제공하더라도 교육 현장은 혼란만 가중될 수 있습니다. 정책 설계자는 이 점을 새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교과서의 법적 지위 격하 논란은 단순히 '전 정권 정책 뒤집기'로만 볼 것이 아니라 그 판단 근거가 현장의 실효성과 데이터에 기반한 것인지 따져봐야 합니다. 기술 중심의 정책이 이념이나 정치 논리에 휘둘릴 경우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과 교사에게 돌아가게 됩니다. 예산 낭비, 정책 불신, 현장 혼란 등은 모두 반복돼온 교육정책 실패의 전형입니다.
AI 디지털교과서를 폐기하거나 무조건 도입하는 이분법적 접근은 바람직하지 않아 보입니다. 필요한 것은 명확한 로드맵과 점진적 적용, 그리고 철저한 현장 검증이 우선이란 지적이 나옵니다. 장기적 관점에서 기술의 교육적 효과를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성공 사례와 실패 사례를 병렬적으로 쌓아가는 정책 설계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AI 교육은 피할 수 없는 시대적 과제인 것은 분명합니다. 다만 그 방향과 속도는 교육 현장과의 보폭을 맞춰야 합니다. 기술과 교육 사이에서,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균형 있는 정책 설계가 절실합니다. 미래 인재를 기르기 위한 디지털 교육의 길, 지금부터 제대로 다져야 합니다.
인공지능 디지털교과서 (AIDT) 활용 학교인 충북 청주 복대초등학교를 방문해 수업을 참관하고 있다. (사진=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