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데없이 고집부리는 성격이 젓가락질에 남은 걸까요. '정석' 젓가락질과 거리가 멉니다. 중지에 젓가락을 걸쳐놓고 검지로 움직입니다. 젓가락질 못 해도 밥 잘 먹는다는 격언처럼 잘 먹고 삽니다. 너무 먹어서 탈입니다.
젓가락질은 어설프지만, 밥풀에 민감합니다. 밥알은 한 톨도 남기지 않습니다. 그릇 가장자리에 붙은 밥풀까지 떼 먹습니다. 배가 불러 한 그릇을 다 못 먹을 것 같으면 미리 깨끗한 숟가락으로 덜어 놓습니다.
"쌀을 소중히 여겨라"라는 밥상머리 교육 덕입니다. 여든이 넘으신 할머니는 논농사를 지으셨습니다. 덕분에 철마다 벼가 익는 걸 보면서 계절이 바뀌는 걸 눈치챘습니다. 몇 해 전 논을 메웠습니다. 아빠는 할머니가 일을 덜 하게 돼 속 시원하다면서도 어딘가 적적한 모양새였습니다.
들이는 품에 비해 논농사가 돈이 되지 않는 게 컸습니다. 지난해만 해도 쌀값은 너무 낮았습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5일 쌀 20㎏당 산지 가격은 5만1345원이었지만, 1년 전 같은 날엔 4만5990원에 불과했습니다.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은 정부가 남는 쌀을 매입하도록 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밀어붙였습니다. 이때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쌀 쏠림 생산이 심화할 수 있다며 "농망(農亡) 법"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올해는 이례적으로 쌀값이 올랐습니다. 14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KAMIS(농산물 유통정보)에 따르면 지난 11일 기준 쌀 20㎏당 전국 평균 소매가격은 5만9763원에 달합니다. 전년도 5만3057원보다 12.6% 높습니다. 평년 5만1778원과 비교해 15.4%나 올랐습니다.
쌀 생산량 자체가 줄었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쌀 생산량은 358만5000톤으로, 전년도 370만2000톤 대비 3.2%(11만7000톤) 감소했습니다.
지난해 농가 수는 97만4000가구로 집계됐습니다. 5200만명의 2%도 안 되는 인구가 쌀을 공급하는 겁니다. 그런데 연 매출 1000만원 미만 농가가 65%로 절반을 넘습니다.
윤석열정부가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던 양곡법 개정안이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의 심사를 앞두고 있습니다. 송 장관은 유임이 확정되자 어느새 양곡법 개정안을 희망법이라 부릅니다. 진짜 희망법이 될진 두고 봐야 합니다. 양곡법으로 시장의 수급 조절 기능에 문제가 생겨 오히려 쌀값이 폭락할 가능성도 남아있습니다.
양곡법을 놓고 여야가 옥신각신하는 사이 농가에선 누군가가 또 논을 메우고 있습니다. 식량 주권을 쥐기 위해 쌀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일본의 쌀값 폭등을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고 합니다. 한가지만 기억하려 합니다. 쌀이 남아돌든 모자라든, 누군가는 여전히 그 한 톨을 지키려 애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