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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게인 2018
입력 : 2025-07-09 오전 7:52:52
“진짜 이러면 장사 못 합니다. 답이 없어요.”
 
지난달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외국산 철강 제품에 5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했을 때, 업계 관계자가 한 말이다. 보통 업계 관계자들은 회사의 이미지나 주가 등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법이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그만큼 50% 관세는 업계에 ‘충격과 공포’로 다가온 것일까. 25% 관세 부과 때는 어찌저찌 수출을 이어갔지만, 50%는 사실상 “미국에 수출하지 말라”는 말과 다름없다. 수출하면 오히려 적자가 나는 구조다. 
 
포스코 포항제철소에 있는 용광로에서 노동자 한 명이 쇳물이 잘 쏟아져 나올 수 있도록 출선구(쇳물이 나오는 출구) 주변을 정리하고 있다. (사진=포스코 제공)
 
물론 국내 철강업계가 미국에만 수출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처럼 수출 의존도가 높은 나라에 한 시장에만 매달리는 건 곧 생존을 포기하라는 것과 같다.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미국 수출 비중은 전체의 10%를 조금 넘는 수준이다. 가장 큰 비중은 중국·인도 등을 포함한 아세안, 그다음이 유럽, 그다음이 미국이다. 
 
그런데 업계는 왜 이렇게 앓는 소리를 낼까?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미국 시장이 국가별 수출 대상국 중 가장 높은 마진을 보장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미국 내 철강 가격 자체가 높게 형성돼 있고, 미국처럼 산업 전반의 기술력이 뛰어난 국가는 고부가가치 철강 제품에 대한 수요가 많다. 국내 철강업계의 기술력은 세계적으로도 인정받는 수준이라 미국은 특수 철강의 큰손이었던 것이다. 
 
업계 입장에서는 그나마 실적을 내던 시장이 눈앞에서 닫히고 있는 셈이다. 이미 중국산 저가 물량 공세로 범용 철강 제품의 가격 경쟁력은 크게 약화된 상황에서, 고부가가치 제품마저도 미국의 50% 관세 장벽에 가로막히며, 소위 ‘답이 없는’ 국면에 내몰리게 된 것이다. 현대제철과 동국제강은 인천 공장을 약 한 달간 멈추기로 했다. 업계에선 추가 셧다운도 얼마든지 가능하단다. 만들수록 손해니까 아예 안 만드는 게 낫다는 거다. 
 
업계에 ‘지금 무엇이 가장 절실하냐’고 물으면 돌아오는 대답은 단순하다. 그저 과거로만 돌아갔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2018년 문재인정부 시절, 트럼프 1기 행정부와의 협상을 통해 한국은 철강 제품에 대한 관세 대신 수출 쿼터제를 도입하는 데 성공했다. 구체적으로는 2015~2017년 3년 평균 수출 물량의 70%까지는 무관세, 이를 초과하는 물량에 대해서는 25% 관세를 부과하기로 한 것이다. 당시 한국은 미국의 철강 관세 면제를 받은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였기 때문에, 문재인정부의 외교적 협상력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지금 철강업계는 ‘그때 정도만 해줘도 소원이 없겠다’는 입장이다. 
 
철강은 ‘산업의 쌀’로 불리는 국가 제조업의 기초 중의 기초다. 철강이 흔들리면, 자동차·조선·건설 등 모든 산업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정부는 반드시 관세 협상을 제대로 마무리해야 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이후 한동안 컨트롤타워 부재라는 치명적 공백이 있었지만, 아직도 늦은 건 아니다. 영국과 베트남도 미국과의 철강 협상에서 자국에 유리한 해법을 끌어낸 전례가 있다. 한국도 충분히 길을 낼 수 있다는 의미다. 이제, 새 정부의 협상력이 ‘진짜로’ 필요한 순간이다. 
 
박창욱 기자 pbtkd@etomato.com
박창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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