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송정은 기자] 출범 40년이 넘은 한국프로야구에는 '눈물겨운' 우정의 역사가 있습니다.
2000년대 초반부터 KBO리그를 지켜 본 팬이라면 알만한 '엘롯기(엘지·롯데·기아)'가 그 주인공입니다.
엘롯기 동맹의 역사는 2001년부터 시작됐습니다. 프로야구 판에서 팬들의 충성심이라면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 세팀은 2001년부터 2008년까지 8년 동안 돌아가며 꼴찌를 기록(2001~2004년 롯데 / 2005·2007년 기아 / 2006·2008년 엘지)하며 조롱의 대상이 됐습니다.
또 당대를 호령하던 강팀 SK와이번스를 상대로 세 팀 모두 극악의 상대전적을 보여주며 '인기는 많은데 야구는 못하는 팀들'의 대명사가 됐고, 세팀의 팬들은 서로 으르렁 거리면서도, 한편으로는 서로를 동정하며 토닥이는 그림을 당시에는 종종 볼 수 있었습니다.
다시 세월이 흘러 세 팀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2009년 깜짝 우승으로 엘롯기 동맹을 탈퇴한 기아는 2017년과 2024년에도 우승을 차지하며 KBO 최다 우승팀의 면모를 되찾았죠. 엘지도 2010년 중반부터 강팀으로 거듭나더니 2023년엔 무려 29년 만에 통합 우승을 달성하며 팬들을 눈물짓게 만듭니다.
롯데의 행보는 다소 아쉬웠습니다. '8888577'로 대표되는 2000년대 비밀번호 구간을 지나 제리 로이스터라는 명장을 만나 '빅마켓' 구단의 명성을 보여주더니, 이후로는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변변한 성적을 못 거뒀죠.
아픔의 역사를 공유하는 세팀이 2025년 나란히 2,3,4위에 올라있습니다. 그리고 올 시즌 새 구장, 새 유니폼과 함께 멈출 줄 모르는 비상을 거듭하는 한화 이글스가 무려 33년만에 전반기 1위를 기록했습니다.
1위 한화부터 4위 기아까지 게임차는 4게임에 불과합니다. 맞대결에서 위닝 시리즈라도 거두면 언제든 순위표가 또 요동칠 수 있습니다.
네 팀이 동반 가을야구에 진출한 것은 역사상 단 한 차례도 없습니다. 엘롯기의 확장 의미로 '엘롯기한'도 많이 쓰였던 걸 생각하면 올 시즌 상위권 순위표는 상당히 생소할 수 밖에 없습니다.
상위권 네팀의 선전을 KBO가 누구보다 반길 거라는 농담도 나옵니다. 현 허구연 총재가 해설위원 시절 유독 인기팀 위주의 편파해설을 했다는 논란도 있었으니 말이죠.
올 시즌 네 팀 중 누가 우승을 하더라도 새로운 역사가 쓰일 겁니다. 한화는 26년만에, 롯데는 무려 33년 만에 우승을 차지하게 되며, 기아와 엘지는 '왕조'를 구축할 수 있는 큰 발판이 될겁니다.
"너네도 오늘 졌어?"라며 서로를 위로하던 팀의 팬들이 이제는 "너네도 오늘 이겼어?"라며 서로를 극도로 견제하는 재미있는 광경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점입가경'이라는 말이 정말 어울리는 올 시즌 프로야구, 과연 누가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을까요?
송정은 기자 johnnyso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