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여야가 합의해 상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번 개정안은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를 명시하고, 감사위원 선임 시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을 합산해 3%까지만 인정하는 이른바 ‘3% 룰’을 도입한 것이 핵심이다. 이 조항들은 글로벌 스탠다드로 보자면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수준이다.
서울 남산에서 도심 일대 주요 기업체 건물들이 보이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재계는 마치 기업이 곧 무너질 것처럼 반발하고 있다.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가 배임죄와 주주소송을 남발하게 할 것이다’, ‘3% 룰로 인해 기업의 중대하고 신속한 의사결정이 마비될 수 있다’는 식이다. 경제지는 이런 재계의 우려를 여과 없이 실어 나르며 위기감을 조성한다. 이번 개정안의 본질을 아는 이들에겐 헛웃음이 나오는 상황이다.
이창민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배임죄는 지배주주가 일반 주주의 이익을 침해한 경우에만 적용되며,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는 글로벌 기준인데 이로 인해 배임죄가 남발될 가능성은 낮다”며 “과거에도 지배주주가 주주의 이익을 침해했을 때 배임죄가 엄격히 적용되지 않았다는 점, 한국 법원의 친기업적 성향 등을 고려할 때 이번 개정으로 법 적용이 과도해질 가능성은 많지 않다”고 했다. 이어 “주주대표소송은 소송 비용이 크고 승소도 쉽지 않으며, 피해 입증 책임도 주주에게 있기 때문에 법이 도입되더라도 구조적으로 남용되기 어려운 건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김우찬 고려대 교수는 “법에 따르면 분리 선임되는 사외이사는 한 명뿐이기 때문에, 외부 주주가 추천한 인사가 이사회에 들어간다고 해서 경영에 큰 차질이 생긴다는 주장은 지나치게 과장된 것”이라며 “이사회 결의는 과반 찬성으로 이뤄지고, 감사위원회도 최소 3명으로 구성되는데 두 명이 총수 측 인사라면 한 명의 목소리는 사실상 무시될 수 있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감사위원 한두 명을 분리 선임하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전원을 분리 선임해야 진정한 지배구조 개혁이 가능하다”며 “이외에도 개선해야 할 과제는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고 말했다.
재계가 상법 개정안에 그렇게 반대하는 이유는 그동안 우리 기업 구조의 특징인 즉 ‘총수=지배자=경영자’라는 삼위일체 구조가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일까. 상속을 위해 이사회를 장악하고, 수익 구조와 무관한 투자를 총수 마음대로 할 수 있던 시대를 이어가고 싶기 때문일까. 이번 개정안을 두고 ‘위기’라 말하는 재계의 반응은, 오히려 그동안의 '특혜'를 자인하는 것은 아닐까.
이 법 하나로 모든 것이 바뀌지는 않는다. 지배구조 개혁은 이제 시작일 뿐이며, 한국 자본시장이 신뢰를 회복하려면 더 많은 후속 조치가 필요하다. 이 첫걸음을 두고 “경제가 흔들린다”고 아우성치는 풍경은 씁쓸하다. 주주들은 이제 경영의 정당성을 묻고 있다. 기업이 왜,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를.
박혜정 기자 sunright@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