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벌써 하반기에 접어들어 상반기를 돌아보며 인상 깊었던 일들을 떠올려 보게 됐습니다. 그 중 가장 아찔하고 놀랐던 사건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이미지=챗GPT)
주말 저녁 지인들과 저녁을 먹은 뒤 늦게 귀가하던 날이었습니다. 고민을 안고 있었던 저는 집까지 먼 거리였지만 걸어가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무심코 걷는 것이 생각을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았거든요. 지도앱이 알려주는 길을 따라 가다보니 이따금씩 어두컴컴한 골목길이 나왔습니다. 빠른 길로 안내하다보니 오밤중에 인기척이 전혀 없는 고개를 넘어가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돌덩이처럼 무거워진 다리를 끌고 집 앞으로 걸음을 재촉했습니다.
입구에 다다르자 옆 동 앞에서 희끗한 물체가 보였습니다. 흰 옷을 입은 한 여성이 차량 옆에 쓰러져 누워있었습니다. 저는 정말 깜짝 놀라서 그 자리에서 소리도 지르지 못했습니다. 사고를 당했거나 정신을 잃은 것일 수 있다고 생각해 아까의 담력보다 더 키워 그녀에게 다가갔습니다. 그녀를 흔들었고, 다행히 의식이 있었습니다. 일단 안도했습니다. 그러나 앳된 얼굴을 한 그녀는 티셔츠에는 약간의 피가 묻어있었고 옷 단추 몇 개는 풀려있었습니다. 스타킹은 허벅지까지 내려와 있어서 저를 더 경악하게 했습니다.
저는 그녀를 다시 깨워 술을 마셨느냐고 물어봤지만 대답도 못하는 수준이었습니다. 스타킹을 황급히 올려준 뒤 그녀를 앉히려 해봤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몸에 하나도 힘이 없는 그녀는 바로 다시 바닥에 누웠습니다. 같이 술을 마신 사람이 어디 있는지, 집은 어딘지 등을 물었지만 아무 것도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자꾸 대답 안하면 경찰을 부르겠다고 했더니 그때만 싫은 듯 한 소리를 낼 뿐이었습니다.
결국 저는 112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통화량이 많아 바로 연결이 어려웠습니다. 약간의 기다림 끝에 경찰에게 현 주소를 불러주며 빨리 오라고 요청할 수 있었습니다. 위급할 때마다 대기가 걸리는 긴급전화가 참 원망스러웠습니다. 3명의 경찰이 도착했고 저는 빠르게 그녀가 있는 곳으로 그들을 안내했습니다. 저에겐 이제 귀가해도 좋다고 말했지만 저는 걱정이 돼 떠날 수가 없었습니다.
제게 한마디조차 제대로 뱉지 못하던 그 친구는 경찰이 도착해서 인적사항을 묻자 이내 대답을 해냈습니다. 앉아 있기까지 했습니다. 그 사이 해독이 이뤄진 것인지 경찰이라는 존재가 그만큼 무서운 것인지 모를 일입니다. 경찰은 그녀에게 양해를 구해 주민등록증을 살폈고 주소를 알아냈습니다. 놀랍게도 그녀는 저와 동만 다른 같은 곳에 살고 있었습니다. 집 앞에서 들어가지 못하고 그렇게 드러누웠던 것입니다.
소통이 불가능하던 그녀는 경찰이 양쪽에서 부축해 설 수 있었습니다. 급기야 저한테 고맙다고 머리 숙여 인사까지 했습니다. 지금도 집 앞을 나설 때 마다 그쪽 동을 바라보며 그 친구를 마주칠까 살펴보곤 합니다. 그날 제발 아무 일이 없었길, 그녀를 발견한 사람은 차라리 나 하나 뿐이길 바라면서 말입니다. 그녀 덕인지 복잡하던 제 머릿속은 그 친구로 깜짝 놀라 하얗게 휘발됐습니다. 안전보다 중요한 건 없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