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을 하려면 낭비를 해야지. 낭만과 효율은 완전히 상반된 말이야.”
어느 술자리에서 친한 형이 했던 이 말이 머릿속에 오래 남았다. ‘낭만’이라는 말은 아름답지만, 동시에 어딘가 비효율적이다. 그리고 대개 그 끝은 손해에 가깝다.
러시아 모스크바의 붉은광장에 마련된 크리스마스마켓에서 방문객들이 눈길을 걸으며 커피를 마시고 있다.(사진=뉴시스)
생애 가장 대담한 ‘낭만’을 꼽자면, 2010년 1월, 입대를 한 달 앞두고, 러시아 모스크바로 유학 간 여자친구를 보러 2주간 여행을 떠난 순간이다.
평일에는 계절학기를, 주말에는 용두동 홈플러스 푸드코트에서 설거지와 청소를 병행하며 한달 간 모은 돈 80만원. 과외 같은 ‘효율적인’ 아르바이트 자리는 구하지 못했다. 당시 기준으로도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었다. 그래도 무작정 떠났다.
입대를 앞두고 하는 모든 행동에 효율이 있을 리 없겠지만, 그렇게 비효율적으로 모은 돈으로 떠난 비효율적인 여행은 20살 청춘이 가질 수 있는 치기 어린, 하지만 그렇기에 아름다운 행동이었다(고 정신승리하고 있다).
물론 그녀와는 2014년, 캐나다 어학연수를 앞두고 헤어졌다. 그렇기에 러시아 여행은 결과적으로 비효율의 극치였다. 시간과 돈을 들였지만 남은 것은 아련한 추억 몇 조각뿐이다. 다만, 그런 선택을 했다는 사실 자체는 후회하지 않는다(고 자위하고 있다). 오히려 이 경험이 삶을 더 입체적이고 풍부하게 만들었다(고 믿고 싶다).
낭만이란 본래 효율적인 삶과는 거리가 있다. 살아가는 데 그다지 필요하지 않고, 타인의 눈에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행동. 그런데 본인에게는 너무나도 좋은 것. 그것이 바로 낭만이다. 낭만은 사람의 내면을 단단하게 만든다.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감정에 충실했던 시간들이, 결국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요즘은 확실히 낭만이 사라진 시대다. 책이나 영화를 보는 대신 스펙을 쌓는다. 미술관이나 전시관에 가는 대신 자격증 강의를 듣는다. 이들의 입장에선, 책이나 영화, 미술관, 전시관이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거다.
‘오글거린다’는 말 한마디에 온라인 상에서 감성적인 글은 사라졌고, 누군가 취미를 즐기면 ‘돈 낭비’라는 말이 먼저 돌아온다. 낭만은 어느 순간부터 사회에서 쓸모없는 것으로, 혹은 불필요한 것으로 분류되기 시작했다. 낭만의 부재로 결국 감정은 사라지고, 내면은 말라간다. 과연 그것이 사람답게 사는 삶인가.
낭만은 ‘지금 당장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것이 때로는 낭비처럼 보여도, 그런 선택들이 우리의 삶을 오랫동안 지탱해준다.
낭만을 이야기할 때마다 과거 방송인 서유리 씨가 SNS에 남긴 글이 떠오른다. 낭만의 본질을 가장 단순하고 정확하게 표현한 문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학생 여러분. 정말 힘든 거 알지만, 알바를 해서든 죽도록 돈 모아서 장기여행 한 번은 꼭 다녀오세요. 저는 평화롭던 시절 이집트 다녀온 추억으로 아직 살아요.”
박창욱 기자 pbtkd@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