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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수영
입력 : 2025-06-24 오후 4:46:32
초등학교 3학년이 된 아이가 신이 나 안내문을 읽어 줍니다. "수영복, 모자, 수건, 물안경, 젖은 물건을 담을 가방만 있으면 돼. 선생님이 씻을 건 필요 없대. 물만 잘 닦고 집에 와서 샤워하기로 했어"라면서 말이죠. 수업의 취지는 생존 수영 교육이지만, 아이는 학교를 벗어나 친구들과 수영장에 간다는 거 자체가 신이 나 보였습니다. 
 
물론 이 아이가 신이 난 이유는 또 있습니다. 그간 수영학원을 다니면서 다져놓은 실력을 뽐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평형까지 진도를 끝내고 접영에서 팔 올리는 것만 배운 상태임에도 자신은 접영까지 배워 고급반에 속한다며 신청서에 초급, 중급, 고급 중 고급반에 동그라미를 쳐서 냈습니다. 
 
즐거우면 그만이라 생각이 들면서도 씁쓸하기 그지없습니다. 아이에게 수영을 시킨 것은 지난 겨울방학부터였습니다. 3학년부터 학교에서 수영 수업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부랴부랴 등록했습니다. 1년에 10시간에 그치는 수업이지만, 천방지축 아이가 혹시라도 까불다가 불의의 사고가 발생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이었죠. 물에 뜨기까지 한달이 넘게 걸렸던 게 생각납니다. 아이마다 편차가 있겠지만 수영을 배우지 않은 상태에서 모두가 단체로 수영을 해야한다는 게, 1년에 단 10시간만으로 수영을 배울 수 있다는 게 의아하게 다가올 뿐입니다. 2014년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초등학교 생존수영 교육이 제도화됐지만, 있기만 한 수준이라는 생각을 지우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부산 영도구 한국해양대학교 레포츠센터에서 봉래초등학교 학생들이 생존수영법 배우고 있다.(사진=뉴시스)
 
주변을 살펴보면 그저 있기만 한 수준에 머물러 있는 제도들을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지난 2022년부터 의무화된 정보보호공시제도 이 중 하나로 생각됩니다. 기간통신사업자나 상급종합병원, 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 제공 사업자, 데이터센터 사업자, 매출 3000억 이상 기업, 하루 평균 이용자 수 100만명 이상 정보통신서비스를 보유한 기업이라면 정보보호에 투자한 금액을 공시해야 합니다. 의무 공시를 이행하지 않으면 과태료가 부과됩니다. 
 
취지는 기업들의 정보보호 투자를 투명화해 정보보호 투자에 책임을 지우겠다는 거지만, 대부분 공시 이후 지적을 받고도 큰 변화는 수년째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티가 나지 않는 투자를 최소화하려는 기업들의 얕은 수가 반영된 것이고, 정부도 이를 강제할 방법은 없기 때문에 수년째 정보보호 투자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습니다. 
 
이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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