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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골방
입력 : 2025-06-23 오후 9:11:08
18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2025 서울국제도서전에서 독자들이 책을 읽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책 중에서도 에세이 장르를 좋아합니다. 분명 개인적인 이야기를 풀어놓은 글인데, 그 안에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으로 느껴지거든요.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에세이'라는 말은 미셸 드 몽테뉴의『에세』에서 비롯됐습니다.
 
미셸 드 몽테뉴는 16세기 프랑스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사상가이자 철학자입니다. 그는 누구나 겪는 실존적 문제들에 대해 인간적이고 온당한 답을 찾으려 했고, 주어진 삶을 풍요롭고 만족스럽게 살아가는 길을 고민했는데요.『에세』는 그런 몽테뉴의 사적인 고백이자, 한 인간이 자기 삶을 탐구하며 써 내려간 기록입니다.
 
몽테뉴는 슬픔, 무위, 의연함, 공포, 우정, 죽음, 나이 등 107가지 주제의 이야기로『에세』를 작성했습니다. 최근 저는『우리 마음은 늘 우리 저 너머로 쓸려 간다』라는 제목으로 엮인『에세』의 편집본을 읽었는데요. 약 500년 전 쓰인 글임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마음에 와닿는 문장들이 많았습니다.
 
몽테뉴는 이렇게 말합니다. "다른 것들이 우리 몫이 되게는 하되, 떼어 내면 우리 살갗이 벗겨지고 살점이 함께 떨어져 나갈 만큼 강하게 결합되거나 달라붙지는 말아야 한다. 세상에서 가장 큰 일은 자신을 자기 소유로 만들 줄 아는 일이다."
 
그리고 또 이렇게 말합니다. "마치 아내도 아이들도 재산도 시종도 하인도 없는 듯 이야기하고 웃으면서, 어쩌다 그들을 잃게 된다 해도 그들 없이 사는 것이 새로운 일이 아니게끔."
 
조금 냉정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결국은 '홀로 서는 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몽테뉴는 단짝 친구를 잃은 후 몇 년 사이 아버지, 아우, 딸까지 연달아 떠나보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이들을 잃은 상실의 시간을 지나며, 그는 결국 자기 자신을 중심에 두는 삶의 방식을 선택했던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가 강조한 '골방' 역시 그런 의미에서 읽혔습니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조용한 내면의 공간. 삶이 요동칠 때마다 잠시 몸을 숨기고 마음을 다잡을 수 있는, 그런 장소 말이지요.
 
몽테뉴에게는 글을 쓰는 일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이 곧 그 골방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우리에게도 그런 공간 하나쯤은 필요하지 않을까요. 누구의 시선도 닿지 않는, 오롯이 나만의 생각과 감정이 숨 쉬는 골방. 그곳에서 우리는 조금씩, 흔들리면서도 다시 중심을 찾아가게 되는지도 모릅니다.
 
김유정 기자 pyun9798@etomato.com
김유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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