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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핸드폰을 버리지 못한다
입력 : 2025-06-19 오후 6:22:57
누구나 어릴 때부터 차마 버리지 못하고 모셔두는 물건 하나씩은 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그 대상이 애착 인형일 수도, 아끼는 서적일 수도 있겠지만 저한테는 바로 핸드폰인데요. 
 
(사진=챗GPT)
 
손에 처음으로 핸드폰을 쥔 건 중학교 1학년 때였습니다. 당연히 지금과 같은 터치스크린 방식의 스마트폰은 아니었고, 덮개를 여닫는 형태의 폴더폰이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올라갈 때쯤엔 상단 슬라이드를 올리고 내리는 형태의 슬라이드폰을, 대학교를 입학할 때쯤엔 미약하게나마 터치 기능이 있는 터치스크린폰을 손에 쥐었습니다.
 
그러나 가히 혁명이라 불려도 부족하지 않는 스마트폰을 처음으로 구입한 날에도 구형 핸드폰들은 방구석 서랍 안에 고이 잠들어 있습니다.
 
그때만 해도 구형 핸드폰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수십 년이 지나 레트로 열풍이 불면, 지금은 헐값인 고물들이 제값을 받을 수도 있겠다는 기대 때문이었죠. 물론 이건 표면적인 이유고, 버리지 못한 이유에는 찰나의 게으름도 포함돼 있을 겁니다.
 
굳이 꺼내볼 생각도 없던 고물을 다시 찾게 된 건, 이사철에 우연히 구형 핸드폰 충전기를 발견했을 때였습니다. 너덜거리는 충전 젠더와 코팅이 다 벗겨진 핸드폰으로는 수십 분을 충전해도 전원이 겨우 들어오는 수준에 그쳤습니다. 그러나 다시 방전되기까지 그 짧은 만남 속에서 문자를 몰래 보던 수업 시간, 친구들과 찍은 흐릿한 졸업식 사진, 011·017로 시작하는 통화 기록까지 낡은 핸드폰을 매개로 긴 여행을 다녀오기엔 충분한 시간이었습니다.
 
핸드폰을 바꿀 때마다, 새 기종의 성능이나 디자인에 감탄하지만, 느리고 투박한 그 폴더폰과 슬라이드폰이 제겐 더 큰 울림을 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옛 핸드폰들은 앞으로도 서랍 안에 있을 겁니다, 팔지 못할 추억이라는 명분으로, 계속.
 
박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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