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픽사베이)
[뉴스토마토 동지훈 기자] 사람유두종바이러스(HPV)는 자궁경부암의 대표적 원인입니다. 지난 2023년 중앙암등록본부 자료를 보면 자궁경부암 발생률이 가장 높은 연령층은 40~50대 여성으로 나타났습니다. HPV는 자궁경부암 외에도 항문생식기암, 두경부암 등의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HPV 감염으로 생긴 암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건 아닙니다. 자궁경부암을 예로 들면 매년 약 3000명의 환자가 발생하는데, HPV 예방접종으로 충분히 예방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만 12~17세 여성 청소년과 만 18~26세 저소득층 여성은 법률에 따라 필수 예방접종을 합니다.
HPV 감염으로 생긴 암이 여성만 노리는 건 아니죠. 남성이 HPV에 감염된 뒤 암에 걸릴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습니다. HPV에 감염된 타인과의 성적인 접촉이 암으로 번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 만큼 남성도 HPV 백신을 접종할 필요성은 충분합니다.
해외에선 이미 남아 HPV 백신 접종이 본궤도에 올랐습니다. 일례로 지난 2007년 세계에선 처음으로 HPV 백신 국가 접종 프로그램을 도입한 호주에선 2020년 남아(12~13세) HPV 백신 접종률이 78%까지 올랐습니다.
한국도 HPV 감염에 따른 암 사전 예방을 위해 백신 접종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아쉬운 점은 접종 대상이 여성 청소년에 국한된 점이죠. 지난해 질병관리청 자료에 따르면 2011년생의 HPV 백신 1차 접종 완료율은 여아 79.2%로 높은 반면 남아는 0.2%에 그쳤습니다. 지난 2016년부터 '건강여성 첫걸음 클리닉 사업'을 시행해 만 12세 여아에게 4가 HPV 백신 예방접종을 지원했는데, 남아에 대한 지원은 빠진 영향입니다.
남아도 HPV 백신 접종 대상에 포함하려는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질병청은 성별과 무관하게 모든 청소년에게 HPV 9가 백신 접종을 지원하려던 채비를 했습니다. 지난 20대 대통령선거에선 여야 후보 모두 공약으로 내세우기까지 했습니다. 지난 정부에선 국정과제로도 채택됐습니다. 남아 HPV 백신 접종 지원이 흐지부지된 건 12·3 비상계엄으로 국정 동력이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지난 정권 당시 야당의 예산 감액으로 남아 HPV 백신 접종이 늦어졌다는 문제 제기도 일견 가능해 보입니다. 작년 11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관련 예산 증액이 처리되긴 했으니까요. 하지만 여야 대립으로 HPV 백신 접종 대상 확대가 늦어졌다고 하기엔 지난 정부에겐 2년 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내란으로 속도를 내지 못했던 남아 HPV 백신 접종은 최근 두 번째 기회를 얻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이수진 의원이 지난 12일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하면서죠. 법안은 12세 이상 26세 이하 전 국민에게 HPV 백신 접종 비용을 지원하는 내용이 골자입니다.
지난 2년간 지켜지지 않은 약속을 이행할 수 있는 기반은 마련됐습니다. 입법을 통한 질병 예방 환경이 조성된 만큼 새로 출범한 정부의 전격적인 입장 변화가 필요한 때입니다.
동지훈 기자 jeehoo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