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로봇 산업은 국가 주도가 아니었습니다. 산학연, 특히 ‘학연’이 주류였습니다.”
최근 로봇 분야를 전공한 교수는 업계의 문제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학계에서만 로봇 분야를 다룬다는 이야기입니다. 만성적인 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분야에서만 연구가 이뤄지니 성장과 확장이 어려웠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기술 축적도 이뤄지기 어렵고 주변 경쟁국에 도태될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 2014년 5월 삼성전자 직원이 중국 산시성 시안시 삼성전자 메모리 반도체 공장에서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뉴시스)
전혀 반대인 상황의 나라가 있습니다. 바로 중국입니다. 급성장을 이룬 거의 모든 분야에서 그렇듯, 중국은 로봇 산업에도 천문학적인 자금을 투자했습니다. 정부가 주도해 어마어마한 지원을 쏟아부었고, 그 결과 중국의 로봇 산업은 눈부신 성장을 이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얘기를 정확히 1주일 전 다른 교수에게도 들었습니다. 정부의 지원이 부족하고, 연구할 시설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중국이 관련 기업에 보조금을 퍼부어 초고속 성장을 이룩한다는 것입니다. 차이가 있다면, 1주일 전에 똑같은 이야기를 한 교수는 반도체 업계의 학자였다는 것입니다.
놀랍게도, 똑같은 이야기를 한 다른 분야의 두 교수들은 해법도 같은 것을 제시했습니다. 바로 정부의 지원입니다. 다만 무작정 현금 투입만을 요구한 것은 아닙니다. 이를테면 반도체 학계의 교수는 ‘공공 팹’을 강조했습니다. 천문학적인 반도체 장비를 구하기 어려운 학계와 연구계를 위한 연구 공공시설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로봇 학계 교수 역시 공공센터를 장려했으면 좋겠다고 아쉬움을 토로했습니다.
근 10년여간 다소 자주 바뀐 듯한 역대 대통령 중 과학을 천시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늘 과학기술을 중심에 두겠다고 이야기했고, 이번에도 예외는 아닙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R&D 등 각계를 위한 지원을 누차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이재명 정부는 그래서 뭘, 어떻게 돕겠다는 건지 아직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박정희 정책도, 김대중 정책도 필요에 따라 쓰겠다”고 했지만 무슨 정책을 쓰겠다는 것인지는 아직 모호합니다.
무엇이 필요한지 말할 사람은 이미 충분하고, 무엇이 부족한지도 뚜렷합니다.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지원, 실행력 있는 정책 설계. 지금 필요한 건 추상적이고 뭉뚱그려진 약속이 아니라 직접 듣고 살피고자 하는 의지입니다.
안정훈 기자 ajh76063111@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