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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발을 짚고서야 보인 것들
입력 : 2025-06-17 오후 8:44:49
한쪽 발목 인대가 끊어져 수술을 받았습니다. 추가 손상을 막기 위해 깁스도 했습니다. 다친 발로 땅을 딛지 말라는 소견에 목발에 의지해 생활하게 됐습니다. 처음엔 별일 아니라고 여겼지만, 막상 목발을 써보니 생각보다 훨씬 불편했습니다. 3분만 걸어도 팔이 아파 쉬어야 했습니다. 평탄하다고만 생각했던 동네 길은 좌우 경사와 단차, 언덕으로 가득했습니다. 익숙했던 일상이 낯설고 버겁게 느껴졌습니다.
 
여성이 목발을 짚고 다친 다리를 살피고 있다(이미지=픽사베이)
 
그중에서도 가장 낯설었던 건 대중교통이었습니다. 주로 택시를 탔지만, 비용이 부담돼 몇 번은 버스나 지하철을 이용했습니다. 한 번은 버스를 타려는데, 기사님이 제 앞을 지나쳐 정류장 앞쪽에 정차했습니다. 아마 그곳에 먼저 대기하던 승객을 위한 것이었겠지요. 예전 같았으면 뛰어가 탔겠지만, 몸이 불편한 당시에는 그저 놓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 어떤 날엔 교통약자석에 앉은 승객들이 자리를 비켜주지 않아, 단차가 있는 뒷좌석을 어렵게 이용해야 했습니다.
 
지하철은 더 큰 어려움이었습니다. 넓은 역사 안에서 승강기 위치는 제각기 흩어져 있었습니다. 특히 환승 구간은 최악이었습니다. 승강기를 타기 위해 한참을 걷다가 돌아가는 등 동선이 비효율적이었습니다. 결국 걷다 지쳐 계단을 이용하다가 넘어질 뻔하기도 했습니다. 무리해서 이동하다가 다치는 교통 약자들의 마음을 깊이 이해하게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일련의 경험을 하고 나니, 휠체어를 타는 지체장애인 친구가 들려줬던 일본 여행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친구는 버스를 탈 생각이 없었는데도, 모든 버스가 앞에 멈춰 서서 탑승 여부를 물었다고 했습니다. 지하철에선 역무원이 직접 나와 이동식 발판을 설치해 주고, 내릴 역에도 다른 역무원이 대기하다가 도움을 줬다고 합니다. 출퇴근길임에도 시민들이 자연스럽게 길을 터줬고, 먼저 타도록 배려했다고도 했습니다. 
 
그 친구는 일본과 우리나라의 차이를 배려심에서 찾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하철을 이용할 때 저를 돕고자 하는 눈빛들이 분명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결국 중요한 건 마음이 아니라, 그 마음이 닿을 수 있도록 돕는 구조와 환경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통약자의 불편을 세심하게 살피고, 그에 맞는 해법을 마련하며, 일상에서 자연스러운 배려가 이뤄지도록 하려면 국가의 주도적 역할이 필요합니다. 그런 흐름을 가능케 하는 힘은 상당 부분 재정에서 비롯됩니다. 일본이나 북유럽, 독일처럼 교통약자 인프라가 잘 갖춰진 나라는 모두 공공사회복지 지출이 높은 국가들입니다. 반면 한국은 OECD 국가 중 최하위권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교통약자를 도와야 한다’는 말에 고개를 젓는 사람은 드뭅니다. 누구나 언젠가는 교통약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복지 예산을 늘리자는 논의는 외면합니다. 선의가 실현되기 위해선 제도와 재정이라는 현실적 기반이 필요합니다. 그 기반이 갖춰질 때, 비로소 일상의 불편도 줄어들 수 있습니다. 이제는 그 마음이 머무르지 않고 시스템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구체적인 움직임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박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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