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을 쌉니다. 23년 만에 이사를 갑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기간에 이사 와 중·고등학교, 대학 그리고 사회인이 된 지금까지 한 곳에 머물렀습니다. 연식이 오래된 아파트라 겨울엔 난방이 4시간으로 제한되고 여름엔 물탱크 청소로 보름간 찬물만 써야 하는 불편함에 투덜댄 적도 많았습니다.
2018년 12월, 서울 송파구 ‘헬리오시티’ 단지 입구에 이삿짐업체 차량이 드나들고 있다. (사진=뉴시스)
그럼에도 아파트 단지 안에 무성한 나무와 꽃들이 주는 평온함이 불편함을 잊게 해주었습니다. 특히 집 앞 골목에 들어서자마자 있는 목련 한 그루는 꽃봉오리로 봄이 왔음을 알게 해주었고, 방 창문을 열면 바로 내다보이는 단풍나무들이 붉게 물들어 가을이 왔음을 알게 해주는 것이 참 좋았습니다.
또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경로당 뒤편 처마가 있는 벤치에 벌러덩 누워 나뭇가지가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와 그 사이로 비치는 햇살을 멍하니 쳐다보는 일도 즐거움이었습니다. 이제 이 안식처를 드나들 수도 저만의 산책로를 더는 걸을 수 없다는 생각에 아쉬움이 남습니다. 익숙한 것과의 결별은 익숙해지기 어렵습니다.
그러다 짐을 싸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 머무를지 아니면 앞으로 더 나아갈 것인지를요. 낯선 곳으로 떠나는 것이 어쩌면 ‘나의 새로운 성장’을 발견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떠남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나를 만나러 가는 여정의 시작이라는 말을 믿어 보려고 합니다.
오세은 기자 os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