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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질문
입력 : 2025-06-12 오후 6:39:20
"작품도 안 본 사람이 인터뷰를 하러 왔어?"
 
연예&스포츠부서에서 근무했던 3년 차. 타매체 기자가 모 배우의 인터뷰 자리에서 들었다는 말입니다. 해당 기자는 어떤 사정인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언론 시사회 후 주연 배우 인터뷰 자리를 갑작스럽게 가게 됐다고 했습니다. 영화 개봉 전 하는 언론 시사회는 참석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작품도 보지 못하고 간 것이죠. 
 
강유정 대변인이 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브리핑룸 정비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하지만 그 기자는 큰 문제가 없을 거라며 인터뷰 자리에 참여했다고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유명 배우의 인터뷰는 으레 여러 매체가 신청하기 때문에 하루 종일 타임라인을 만들어 진행합니다. 시간대별로 많으면 최대 12명의 기자들이 한꺼번에 들어가죠. 그래서 질문을 준비해 가야 한다는 부담도 적은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하필 해당 기자가 들어간 시간대에는 소수의 기자만 있었고, 뭐라도 질문해야겠다는 마음에 서툰 질문을 했던 것입니다. '아차' 하는 순간 이미 말은 시작됐고, 해당 배우는 순식간에 표정이 일그러지면서 따지듯 물었다고 합니다. 
 
사실 저도 비슷한 연차 때 16부작 드라마를 다 보지 못하고, 드라마 속 주연 배우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변명을 조금 해보자면, 그날은 팀장의 친분으로 강행된 인터뷰라 급히 투입됐기 때문입니다. 
 
당시 인터뷰하는 기자는 총 4명. 뚝뚝 끊기는 진행에 침묵이 싫었던 전 엉뚱한 질문을 했는데요. 그 배우는 감사하게도 무안을 주지 않고 잘 설명해 주며 무난하게 넘어갔습니다. 하지만 한동안 스스로 기자의 질문과 태도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했고, 이후 취재원에 대한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최근 제 과거의 경험이 떠오르는 장면을 보게 됐습니다. 지난 10일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를 향해 가장 처음 질문을 한 기자의 질문입니다. 그는 "야권이랑 온라인상에서 김 후보자님한테 지난 1985년대 미국문화원 점거사건 관련해서 '미국 입국이 불가능하다 반미주의자다'란 사실관계 확인과 한·미 관계에 대한 입장은 어떤지"라고 물었는데요. 
 
이재명 대통령이 12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영상기자실을 찾아 내부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 질문을 듣고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기자라면 그것도 국무총리 후보자에게 하는 질문이라면 적어도 그의 프로필 정도는 공부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란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습니다. 또 질문에 '온라인상에서'란 말을 '야권'이란 말 뒤에 교묘하게 넣은 것도 그렇습니다. 결국 그 기자는 '커뮤니티'를 보고 한 질문이란 것이죠. 
 
또 최근에는 새 정부가 들어서고, 대통령실의 인선에 대한 이목이 집중됐습니다. 기자들은 대통령의 입이 되어주는 대변인의 인선에 특히 주목했는데요. 인문학자이자 22대 민주당 비례의원으로 정치에 입문한 강유정 대변인이 첫 인선으로 발표됐습니다. 그동안 대변인은 언론인 출신이 통상 맡아왔던 것과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첫날 무덤 같다던 용산 청와대실에서 어렵사리 준비한 첫 브리핑은 시작부터 기자들이 "너무 빨라요"라며 아우성이었습니다. 기자생활 11년 차에 그런 모습은 처음이었습니다. 기싸움처럼 보이는 모습은 그뿐만이 아닙니다.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권한 없이 행사한 헌법재판관 임명에 대한 철회하겠다는 브리핑을 한 강 대변인은 브리핑 말미에 "끝입니다"란 말만 남기고 사라졌습니다. 
 
그러자 브리핑룸에 있던 기자들은 "질문은요?"라고 물었는데요. 대변인은 "없습니다"란 말과 함께 장소를 빠져나왔습니다. 그 모습이 생중계되던 현장 카메라는 그 모습을 담았는데, 여기에 찍힌 한 기자는 "재밌네, 재미있어, 재미있어지겠다"라며 비꼬는 말을 내뱉었습니다. 해당 영상은 <채널A> '현장영상' 클립에 잡혔지만, 논란이 되자 모두 삭제된 상태입니다. 
 
이후 브리핑룸에 기자들의 얼굴을 볼 수 있는 카메라를 추가 설치한다는 발표도 이어졌는데요. 다수의 평론가들은 "참 좋은 생각"이라며 입을 모았습니다. 그러나 기자들은 '딥페이크'를 운운하며 반발했습니다. 얼굴을 굳이 공개하지 않아도 기자는 익명이 아닌, 자신의 이름을 걸고 보도하는 '저널리스트'란 점을 잊은 듯합니다.
 
기자는 민의를 대신해 질문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상대에 대한 최소한의 정보도 없는 무례한 질문이나, 태도를 갖는 것은 스스로에게 침을 뱉는 행위나 다름없습니다. 더군다나 '보수 정권'에는 질문도 자체 검열을 통해 하던 이들이 '평등'을 외치는 정부에게 막대한다면 우린 또 소중한 누군가를 잃을 수도 있습니다. 펜의 무게만큼 질문의 무거움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이진하 기자 jh311@etomato.com
이진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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