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성은 기자] "저는 이번에 투표 안 했어요. 투표를 하지 않는 것도 하나의 의사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에 만난 한 지인의 말입니다. 지난 3일 치러진 제21대 대통령선거를 전후로 만난 다양한 지인 중에서 '이번에 투표를 꼭 하겠다'고 말하는 사람의 수만큼 '투표를 안 하고 싶다'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한 지인은 "투표용지에 '투표 거부'를 쓰고 올지 고민하기도 했다"면서 "차라리 투표 거부 의사를 표시할 수 있는 빈칸이 생겼으면 한다"고 말했습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이번 대선의 전국 투표율은 79.4%를 기록했습니다. 지난 1997년 제15대 대선에서 투표율 80.7%가 나온 이후 28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입니다.
12·3 비상계엄과 대통령 탄핵 등 6개월간의 혼란을 거치며 '대한민국 정상화'를 바라는 국민들의 열망이 높은 투표율로 이어졌다는 게 정치권 분석입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 마지못해 투표장으로 향한 유권자도 적지 않았을 것이라는 해석도 나옵니다.
이번 대선 또한 제20대 대선과 마찬가지로 '비호감 선거'로 점철됐습니다. 특히 정책이 실종된 대선 후보들의 TV토론과 막판 댓글 조작 의혹, 대선 후보 한 명을 위한 '방탄 입법' 시도까지 눈살을 찌푸리는 순간의 연속이었습니다.
정치권에 염증을 느낀 국민들은 "그놈이 그놈", "찍을 사람이 없다"는 탄식을 내뱉었습니다. 대선 기간 출장을 갈 때마다 "한 곳은 후보가 마음에 안 들고, 다른 한 곳은 정당이 마음에 안 든다"는 말을 다양한 지역, 여러 사람에게서 들었습니다.
제21대 대통령 선거일인 지난 3일 한 투표소에서 유권자가 투표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렇다 보니 사석에서는 '투표 거부권'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실정입니다. 투표 거부권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한 시민은 "나의 한 표로 결과가 바뀌진 않는다"면서도 "그나마 나은 후보를 찍는 식으로 표를 낭비하거나, 한 후보가 싫어서 상대편을 찍는 행동을 하고 싶지 않다"고 단호히 말했습니다. 다만 어떤 방식으로든 의사 표현을 하고 싶어 투표 거부가 도입됐으면 한다는 얘기를 털어놓았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49.42%의 득표율로 대통령 자리에 올랐습니다.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41.15%)와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8.34%), 권영국 민주노동당 후보(0.98%), 송진호 무소속 후보(0.1%)의 득표율을 더하면 50.57%입니다. 투표하지 않았거나 못한 유권자는 20.6%입니다. 이 대통령을 뽑은 사람보다 뽑지 않은 사람이 더 많은 것입니다.
탄핵 정국을 넘어 우여곡절 끝에 민주주의적 절차를 통해 제21대 대통령이 탄생했습니다. 한 명의 제왕적 권력자가 재탄생했습니다. 이 대통령은 유세 현장에서 자주 "대통령이란 국민을 크게 통합시키는 사람"이라고 얘기했습니다. 당선이 확실시됐던 4일 오전에도 무대에 올라 "통합된 나라 대통령의 책임은 국민을 통합시키는 것"이라며 "큰 통치자가 아니라 국민을 크게 통합시키는 대통령의 책임을 결코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이 대통령에게 표를 행사한 49.42%의 유권자만 보지 않고, 이 대통령을 뽑지 않은 50.57%의 유권자와 투표를 거부한 일부 유권자를 떠올리며 앞으로 5년을 꾸려간다면 '제왕'이라는 말 대신 국민을 크게 통합시킨 '대통령'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김성은 기자 kse5865@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