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을 만나면 결론은 비슷합니다.
“뭐하지?”
“할 게 없다.”
“그럼 그냥 술이나 마실까?”
서울 시내 식당 앞 메뉴판에 맥주와 소주 가격이 표시돼 있다. (사진=뉴시스)
젊은 시절, 볼링도 치고, 플스방에서 밤새 게임을 함께 하던 친구들입니다. 그땐 뭐든 시도해볼 수 있었고, 굳이 의미를 찾지 않아도 즐거웠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러한 '잡기'는 입 밖으로 나오지 않습니다. 마치 ‘술’ 말고는 선택지가 없다는 듯.
중학교 때부터 축구를 즐겼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땀을 흘리며 공을 쫓는 일이 즐거웠습니다. 가끔 멋있는 골이나 예리한 패스, 날카로운 드리블을 성공시킬 때, 순간의 도파민이 짜릿했습니다. 지금도 축구동아리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OB’ 멤버들과. 문제는, 축구가 사람이 너무 많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최소 22명. 대부분 직장인이라 너무 바쁩니다.
어느새 취미라는 것이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직장 생활을 하다보면,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 무언가 해야 합니다. 탁구, 테니스 등 운동 뿐 아니라 악기를 배우거나 그림까지 그려봤습니다. 그 취미들은 모두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단순합니다.
‘이 취미들이 나를 먹여 살릴 것도 아닌데, 왜 시간과 돈을 들여 이러고 있는 거지?’
그 질문이 머릿속을 맴도는 순간, 손을 놓게 됩니다. 예전 같았으면 그냥 해봤을 겁니다. 잘하든 못하든, 재미있으면 그만이었고,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이유를 붙일 필요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어느새 모든 행동에 의미와 생산성을 먼저 따지게 됐습니다. 이게 내게 무슨 도움이 되는지, 시간과 돈을 들일 만큼의 가치는 있는지.
그렇게 계산기를 두드리다 보면 손은 멈추고, 마음은 멀어집니다. 결국 남는 건 술이었습니다. 누구도 잘하지 않아도 되고, 정적이 흘러도 괜찮고, 미친 듯이 떠들어도 상관없습니다. 시간을 때우는 데 이만한 것도 없습니다. 아무런 기대도 목적도 없이, 다만 시간이 흘러가기를 바라면서.
술이 답이 아니라는 건 잘 압니다. 물론 술도 시간과 돈을 들여 마시지만, 다른 것을 시도할 용기도 의욕도 나지 않기에 오늘도, 그냥 이렇게 말합니다.
“술이나 마실까”
박창욱 기자 pbtkd@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