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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는 사기를 막지 않았고 은행은 돈을 돌려주지 않았다
입력 : 2025-06-03 오후 12:26:06
사기 피해자 온라인 카페를 보면 피해 사례 글이 끊임없이 올라옵니다. 돈을 보냈지만 물건이 오지 않고 후기 알바에 참여했다가 수백만원을 잃었다는 피해자들이 하루에도 수십 명씩 글을 올립니다. 공통점은 분명합니다. 모두 "사기인지 몰랐고", "경찰과 은행은 아무것도 해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A씨는 명품 브랜드 할인 쇼핑몰에서 물건을 샀다가 수상한 점을 느껴 결제를 취소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사이트는 이미 폐쇄된 상태였고 카드사에 문의해도 "승인 취소는 어렵다"는 답변만 들었습니다. B씨는 '후기만 작성하면 수익을 준다'는 온라인 아르바이트에 참여했다가 공구 미션이라는 미끼에 속아 7000만원을 날렸습니다. 함께 채팅방에 있던 팀원들은 모두 사기 조직의 일원이었습니다.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피해자를 속인 '트립호스트' 사건에서는 경찰이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환급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사기 일당을 검거했습니다. 하지만 피해자들이 은행에 피해금 환급을 요청하자 일부 은행은 "전통적 보이스피싱이 아니기 때문에 환급 대상이 아니다"라며 신청을 반려했습니다.
 
통신사기피해환급법은 본래 소송 없이도 피해자가 피해금을 돌려받을 수 있도록 만든 제도입니다. 2023년에는 진화하는 사기 수법에 맞춰 리딩방이나 투자 사기까지 구제 범위에 포함시키도록 개정됐고 대법원도 '거짓 정보를 믿고 송금한 투자 사기'에 대해 법 적용이 가능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럼에도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시중은행들은 여전히 '재화나 용역을 제공한 것처럼 보이는 행위는 제외'라는 조항을 근거로 환급을 회피합니다. '사기인지 몰랐더라도 겉으로는 거래처럼 보였으니 보호 대상이 아니다'라는 논리입니다. 그 결과 가짜 쇼핑몰, 후기 알바, 투자형 사기 등은 피해자가 돈을 잃고도 보상을 받지 못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수사당국은 사기범 검거와 피해 예방을 위해 보다 적극적인 법 해석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반면 금융당국과 시중은행은 '사법권의 남용'과 '선의의 계좌주 피해' 가능성을 우려하며 신중론을 고수합니다. 그 사이 피해자는 법과 기관 사이의 틈에서 방치되고 있습니다.
 
은행권은 지난해부터 '자율 배상제'를 도입하며 책임 의지를 보였지만 실제로 피해자에게 배상이 이뤄진 사례는 극히 드뭅니다. 작년 1월부터 8월까지 보이스피싱 피해에 대해 은행이 배상한 사례는 15건에 불과합니다.
 
해외에서는 이용자가 직접 승인한 결제라도 사기 피해로 확인되면 금융회사가 일정 부분 책임을 지는 방향으로 제도가 설계되고 있습니다. 국내 금융사들도 신뢰 기반 금융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보호 조치에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사기범은 플랫폼을 바꾸고 수법을 바꾸며 계속 진화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법과 제도, 그리고 은행의 대응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습니다. 사기를 당한 피해자가 경찰보다 먼저 입증 자료를 모으고 은행을 '설득'해야만 구제를 받을 수 있는 구조는 더 이상 지속되어서는 안 됩니다.
 
'사기엔 친절하고 피해엔 무관심한 나라'라는 말이 공공연한 풍자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더 늦기 전에 구조를 바꿔야 합니다.
 
 
박은령 국민권익위원회 민원정보분석과장이 지난달 22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가짜 온라인 사이트, SNS 등을 이용한 신종 사기 관련 민원이 한 주간 300건을 넘는 등 폭증하고 있어 민원 예보를 발령한다고 밝혔다.(사진=뉴시스)
 
 
김주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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