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서울 강남구 한 오피스텔에서 우체국 집배원이 제21대 대통령 선거 책자형 선거공보물을 우편함에 넣고 있다. (사진=뉴시스)
본래 공약은 '공평할 공(公)'과 '맺을 약(約)' 자를 씁니다. 정부, 정당, 입후보자 등이 어떤 일에 대해 국민들에게 실행할 것을 약속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런 뜻이 점점 무색해집니다. '빌 공(空)' 자 공약이라는 표현이 더 익숙한 게 현실입니다.
제21대 대통령 선거 사전투표가 시작됐습니다. 지난 주 취재 중에 "우리나라 선거 공약은 어차피 '빌 공(空)'자 공약이니 방향성이나 본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정치권에서 쏟아내는 공약은 대부분 선언에 그칠 뿐 현실화 단계까지 고민하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었습니다. 선거철이면 그럴듯한 말잔치와 슬로건은 많지만, 정작 약속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늘 부족해 보입니다.
이번 대선 정국에서는 주요 정당들의 정책공약집 발간도 역대 가장 늦었습니다. 민주당은 사전투표 하루 전날인 28일, 국민의힘은 그보다 하루 앞선 27일에야 공약집을 공개했습니다. 각 당은 조기 대선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따라 현실적 제약이 있었다는 설명입니다.
현직 대통령에 대한 파면으로 조기 대선을 치르는 상황이 애석하게도 처음은 아닙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으로 치러졌던 19대 대선과 비교해도 이번 공약집 발표 시점은 늦었습니다. 당시 홍준표 후보는 투표 22일 전에, 문재인 후보는 11일 전에 공약집을 내놨습니다.
심지어 재외국민 사전투표는 거대 양당의 정책 공약집이 나오기 전인 지난 25일 끝났습니다. 유권자 25만명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제출받아 공개한 '10대 공약' 정도만 참고할 수 있었습니다. 추상적인 단어로 나열된 이번 10대 공약집은 혹자의 말대로 정말 '방향성'이나 볼 수 있는 자료였습니다.
후보들조차 공약을 가볍게 여기는 모습을 보이니 국민들의 냉소가 깊어지는 건 당연한 수순일지도 모릅니다. 주요 대선 후보들은 유세 현장에서 연일 공약을 쏟아냈지만, 대부분은 표심을 겨냥한 단편적 발언에 그쳤습니다. 이를 체계적으로 설명하고 실현 가능성을 보여주는 수단이 공약집인데 막상 펼쳐본 공약집에도 재원 조달 방안 같은 핵심 로드맵은 찾기 어려웠습니다.
다음 대선에선 '조기 대선'이라는 핑계도 사라질 텐데요. 지금이라도 공약의 '빈칸'을 채워 넣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우리 정치의 공허함은 반복되지 않을까요.
김태은 기자 xxt197@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