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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 아닙니다
입력 : 2025-05-23 오후 5:10:50
중국 연변 지역을 여행하던 중, 현지 가이드가 의미심장한 말을 건넸습니다.
 
가이드는 한국 사람이 자신들을 ‘조선족’이라고 부르면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조선족’은 중국 사람들이 붙인 호칭이고, 한국 사람은 자신들을 ‘동포’라고 불러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조선족’이라는 단어는 관습적으로 널리 사용돼 왔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이 용어가 정체성과 인식의 문제로 다가왔습니다. “중국 사람에게 조선족이라 불리는 것도 억울한데, 같은 피를 나눈 동포에게까지 조선족이라 불리는 건 더 억울하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습니다. 그는 덧붙여, 자신의 할머니는 수원 출신, 할아버지는 이북 출신이라고 말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조선족’이라 부르지만, 그들에게는 그 단어가 자신을 ‘경계 밖으로 밀어내는 이름’처럼 느껴지는 것입니다. 국적이 중국이라는 이유만으로 부모 세대의 뿌리와 상관없이 조선족으로 분류되고, 같은 말을 쓰고 같은 역사를 공유한 한국 사람들에게조차 ‘동포’가 아닌 ‘조선족’으로 불리는 현실은 누군가에겐 슬픔이자 차별인 겁니다. 
 
단순히 호칭 사용에 그치는 문제가 아니라, 민족성 유지와 연결되는 문제입니다. '중국 동포'들은 안 그래도 민족성을 지켜나가기 쉽지 않은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동북공정의 여파는 이제 연변 지역의 일상 속까지 깊숙이 스며들고 있습니다. 과거 연변에서는 간판을 만들 때 ‘위에 한글, 아래에 한자’를 병기하도록 법으로 정해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최근 중국 정부가 이 조항을 폐기하면서, 연변 시내 곳곳에는 중국어만 표기된 간판들이 눈에 띄게 늘어났습니다. 한글은 이제 과거의 흔적으로만 남고 있습니다.
 
고등학생 시절 백두산과 두만강 지역을 찾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당시 천지를 오르는 길과 두만강 인근 가판대에서는 중국어보다 ‘동포의 말’이 더 많이 들렸습니다. 하지만 다시 찾은 연변은 달라져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중국어가 일상 언어로 자리 잡았고, 기념품 가게에서는 중국어로 한국 문화를 연상하게 하는 상품을 파는 아이러니한 장면도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식민지 시절을 통해 말과 글의 말살이 얼마나 큰 상실을 낳는지 경험한 민족입니다. 그래서 언어가 정체성과 얼마나 긴밀하게 연결돼 있는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연변에서 만난 현지 가이드가 자신의 언어와 이름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사실은 인상 깊게 다가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체성을 지탱해온 언어와 명칭은 연변 지역에서 점점 희미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동포’라는 정서적 연결보다는, ‘조선족’이라는 행정적 이름으로 그들을 멀어지게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중국 연변 대학 거리.(사진=뉴스토마토)
 
신상민 기자 lmez0810@etomato.com
 
신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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