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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은 끝났고, 짤만 남았다
입력 : 2025-05-22 오후 4:40:34
지난 5월18일 저녁 '6·3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주요 후보들이 참여한 첫 번째 TV토론회가 생방송으로 진행됐습니다.
 
대선 후보들이 국민 앞에서 직접 자신의 정책을 설명하고 서로의 입장을 놓고 논쟁을 벌이는 공식적인 검증 무대였습니다. 유권자 입장에서는 그동안 짧은 뉴스 클립이나 보도자료로만 접하던 후보들의 언행과 사고방식을 비교적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지금까지도 해당 토론회는 다른 방식으로 회자되고 있습니다. 토론이 끝난 지 시간이 꽤 흘렀지만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당시 장면을 편집한 짤과 하이라이트 영상이 여전히 확산되고 있습니다. 특정 후보의 말실수나 감정적 대응, 눈빛과 표정 같은 장면이 '레전드 짤', '사이다 영상'이라는 제목을 달고 퍼져나가고 있으며 일부 영상은 조회수 100만회를 훌쩍 넘기기도 했습니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이 영상들에 달린 댓글들입니다. "너무 재밌다", "속이 다 시원하다", "이 장면 하나만으로 000 뽑아야겠다"는 반응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정책의 내용은 평가되지 않고 자극적인 장면이나 특정한 말투가 지지의 근거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국정을 맡을 사람을 선택하는 기준이 '재미'나 '통쾌함'으로 바뀌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정치인으로서의 자질은 단순한 언변 이상의 것입니다. 어떤 질문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상대를 어떻게 대하는지, 공격을 받았을 때 감정을 어떻게 다루는지 모두가 신뢰의 기반이 됩니다. TV토론은 바로 이런 점들을 종합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장이지만 지금처럼 토론 이후 온라인 소비가 밈 중심으로 흐르면서 그 본질은 퇴색되고 있습니다.
 
후보마다 강점과 약점은 분명했습니다. 누군가는 침착했지만 설득력이 부족했고 누군가는 논리적이었으나 지나치게 공격적이었습니다. 또 누군가는 진심을 말했지만 메시지를 명확히 전달하지 못했습니다.
 
이 같은 세부적인 차이는 SNS 콘텐츠 속에서는 제대로 전달되지 않습니다. 짧게 잘린 영상과 짤 속에서는 맥락이 지워지고 한 장면이 전체 인상을 결정짓는 프레임으로 작동합니다. 결국 유권자의 판단 근거는 단편적 인상에 치우치게 되고 정치의 핵심인 정책 검증은 사실상 배제되고 맙니다.
 
정치는 인기투표가 아닙니다. 대선은 더욱 그렇습니다. 토론은 정책을 검증하는 자리이지 상대를 조롱하고 자극적인 발언으로 박수를 받기 위한 자리가 아닙니다. 실언 하나가 반복 재생되는 동안 한 후보가 준비해온 구체적인 공약과 수치는 유권자의 기억에서 지워집니다. 정치는 예능이 아니며 대선은 밈 경연 대회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지금 필요한 건 누가 더 자극적이었는지가 아니라 누가 더 설득력 있게 설명했는지를 기억하는 일입니다. 짤은 쉽게 퍼질 수 있지만 국정은 그렇게 단순하게 운영되지 않습니다.
 
유권자의 판단도 마찬가지여야 합니다. 조회수 높은 장면이 아니라 준비된 정책과 신뢰감 있는 태도를 기준으로 삼아야 할 때입니다.
 
지난18일 서울 마포구 SBS프리즘타워에서 열린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 주관 제21대 대통령선거 후보자 토론회에서 각 정당 대선 후보들이 선전을 다짐하고 있다.(사진=뉴시스)
 
김주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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