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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호를 녹이는 익숙함
입력 : 2025-05-21 오전 10:26:15
[뉴스토마토 박혜정 기자] 하기 싫은 일을 좋아하게 된 적이 있나요? 제게는 운동이 그랬습니다. 운동하는 걸 정말 싫어했습니다. 숨이 차 헐떡일 때 목 끝에서 느껴지는 칼칼한 고통이 싫었습니다. 땀에 절어 옷이 몸에 들러붙는 느낌도 불쾌했습니다. 시큼한 땀 냄새는 더더욱 견디기 어려웠습니다. 그런 불쾌함을 감내하며 운동하는 사람들을 보면 신기했고, 저와는 다른 부류라 여겼습니다.
 
헬스장 내부에 설치된 웨이트 트레이닝 장비 모습(사진=연합뉴스)
 
처음 헬스장에 가게 된 건 순전히 호의에 보답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마르고 근육 없는 제 몸을 걱정하던 당시 남자친구가 헬스장 3개월 이용권을 선물해 준 겁니다. 그 마음이 고마워서 억지로 갔습니다. 러닝머신 위에서 멍하니 달리면 '내가 여기서 도대체 뭐 하는 거지?' 싶었습니다. 그래도 꾸준히 나가야겠다는 마음 하나로 팟캐스트를 들으며 버텼습니다. 정말 가기 싫은 날엔 스트레칭만 하고 샤워하고 나올 때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3개월을 채우고는 헬스장을 그만두었습니다. 이상한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땀 흘린 뒤 개운하게 샤워하던 기억, 말랑하던 팔뚝에 단단한 근육이 잡혔을 때의 뿌듯함, 운동하며 듣던 팟캐스트의 소소한 재미가 떠올랐습니다. 그렇게 다시 헬스를 시작했고, 점점 욕심이 생겨 수영도, 복싱도 배우게 됐습니다. 지금은 풋살까지 배우고 있습니다. 누가 봐도 운동 체질은 아니지만, 그토록 싫어하던 운동을 좋아하게 됐다는 사실 자체가 제겐 큰 성취입니다.
 
지나고 보니 제 이런 변화는 뇌과학으로 설명이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뇌는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데 본능적으로 저항합니다. 하지만 반복을 통해 익숙해지면, 뇌는 그 일을 점차 편안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 익숙함은 결국 ‘선호’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단순 노출 효과’라는 심리학 개념이 있습니다. 어떤 대상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점점 긍정적 감정을 느끼게 된다는 이론입니다. 특정 음악을 반복해서 들었을 때 그 음악에 대한 호감도가 높아지는 것도 같은 원리입니다.
 
책 읽기를 싫어하지만 정을 붙이고 싶으신가요? 하루에 한 시간씩 책 읽기로 마음먹었는데 번번이 실패하신다고요? 그렇다면, ‘양’보다는 ‘익숙함’에 초점을 맞춰보시면 어떨까요. 마음이 전혀 내키지 않는 날에는 그저 자리에 앉아 책을 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1시간이 부담스럽다면, 딱 15분만 서문을 읽어보는 것도 좋습니다. 새로운 것을 극도로 꺼리는 우리의 뇌가 익숙함을 느끼기 시작하는 것 자체가 큰 성과라고 뇌 과학자들은 입을 모읍니다. 시작은 작고 미미할지라도, 익숙함은 마음의 방향을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바꾸는 힘이 있습니다.
 
박혜정 기자 sunright@etomato.com
박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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