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에게는 오래된 취미가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댄스팀 팀원들과 함께 춤을 추는 것인데요. 올해로 벌써 10주년이 됐습니다. 학창시절부터 춤을 춰왔기에 춤과 함께한 세월은 10년이 넘지만 한 팀에서 10주년을 맞이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빠르게 흘러가버린 시간 속에서 우리는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고 여겼습니다.
(이미지=챗GPT)
결혼이라는 행사가 찾아오기 전까지는요. 늘 팀원들을 채찍질하며 누구보다 강하게 팀을 이끌던 리더가 올해 결혼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신혼집 마련, 대출, 예식장 등 여러 가지 절차를 밟느라 이석증까지 와버린 리더는 춤을 출 여력이 0.1도 없는 상황이 됐습니다. 리더가 수줍게 결혼을 하게 됐다고 발표하자 또 다른 팀원도 "사실..."이라며 자신도 결혼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결혼한 팀원이 없던 것은 아니었지만 연달아 결혼을 준비한다고 하니 '때'가 왔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습니다.
청첩장을 받기 위해 나간 자리에 한 팀원은 한껏 나온 배를 안고 참석했습니다. 임신 5개월차라고 했습니다. 언제쯤 춤을 출 수 있겠느냐라는 질문이 나오자 제대로 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아이를 낳고 기르게 되면 주말을 쪼개서, 체력을 배분해서 춤을 추는 것이 정말이지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답이 없자 다른 팀원이 '세대 교체'가 되는 것이냐고 농담을 던졌지만 왠지 씁쓸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처음으로 임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수년 동안 함께 땀을 흘리며 춤을 춘 사이었지만 우리는 진지하게 결혼, 임신, 출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습니다. 춤추기에도 시간이 모자라서 서로 직업도 모른 채 춤을 췄을 때도 있었으니 얼마간 오가는 사담에 그런 이야기가 끼어있을 리 없었습니다. 사실 한동안 꽤 많은 팀원들이 연애를 하지 않기도 했습니다. 남들이 데이트하는 주말 시간을 우리는 춤에 투자했기에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던 우리가 이제는 생경한 주제로 여느 친구들처럼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친목모임을 그렇게 경계하던 우리인데, 결국 친목모임화 되는 것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누군가는 하고 싶은 일, 취미가 너무 많아서 임신은 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누군가는 주변에 난임이 많아 두려워서 일단 시도를 해보려 한다고 했습니다. 다들 확신에 차서 하는 이야기는 아니었던 만큼 즐거운 분위기로는 흐르지는 못했습니다. 많은 기회비용을 감내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아는 터라 심각한 표정들을 주고 받았습니다.
이렇게 하나둘 결혼, 임신, 출산을 맞이하게 되면 10주년 된 우리 팀이 20주년을 맞이하기란 쉽지 않아 보입니다. 당장 5년 뒤도 불투명하네요. 아직 나이가 많이 어린 팀원들도 있지만 팀 분위기가 이렇게 흘러가면 열정을 함께 모으기는 여간 쉽지 않을 것입니다. 100세 인생에 가임 기간은 짧고, 춤 인생도 찰나. 우리가 내린 짠한 결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