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안 해야 우승'이라는 역설적인 규칙을 내건 '멍때리기 대회'가 2014년 첫 개최 이후 해마다 큰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올해도 지난 11일 서울 반포한강공원에서 126명이 참가한 가운데 대회가 열렸습니다. 참가자들은 90분 동안 졸지도, 집중하지도 않은 채 일정한 심박수를 유지하며 그저 '멍한' 상태를 이어가야 합니다. 뭘 그리 쉬운 걸 가지고 대회까지 여나 싶기도 하지만, 막상 현장에서는 중도 탈락자가 속출합니다. 이 단순해 보이는 과제가 왜 이토록 어려운 걸까요?
성인이 된 이후 우리는 점점 멍때릴 여유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업무 메시지는 쉴 새 없이 울리고, 소셜미디어에는 끊임없이 새로운 정보가 쏟아집니다. 스마트폰을 잠시 내려놓는 순간조차 불안함을 느끼는 우리는 쉴 틈 없이 분주합니다. 헝가리 코르비누스 대학의 한 연구는 이 같은 현실을 꼬집으며 멍때리는 시간이 정신 건강을 위한 필수적인 휴식이라고 강조합니다. 정보 과부하 상태에서 벗어나 잠시라도 뇌를 쉬게 하는 '깨어 있는 게으름'이 우리에게 꼭 필요한 휴식법인 것입니다.
특히 인공지능(AI)이 빠르게 발전하는 오늘날, 인간 고유의 창조성과 직관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자산이 되고 있는데요. 뇌과학자들은 집중에서 벗어난 멍때리는 시간이 오히려 창의력과 직관을 자극하는 시간이라고 강조합니다. 일본의 뇌신경외과 전문의 이와다테 야스오는 저서 '직관의 폭발'에서 "인간이 AI보다 우수한 판단과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원천은 직관에 있다"면서 "이런 직관적 사고는 우리 뇌가 자유롭게 흐르도록 내버려둔 채 아무것도 하지 않는 '멍때림'의 순간 가장 활발히 발현된다"고 설명합니다.
결국 멍때리기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의미한 시간이 아니라 뇌의 잠재력을 극대화하는 고차원적이고 능동적인 휴식입니다. 잠깐의 쉼이 있어야 다시 움직일 수 있듯,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 몇 분이라도 의도적으로 머릿속을 비우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작은 틈을 마련하는 일 아닐까요.
11일 서울 반포한강공원 잠수교에서 열린 '2025 한강 멍 때리기 대회'에서 참가자들이 경연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