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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려의 카네이션
입력 : 2025-05-12 오전 10:54:41
[뉴스토마토 박혜정 기자] 돌이켜보면, 부모님께 가장 크게 느꼈던 감정은 서운함이었습니다.
 
눈 내리던 어느 겨울날, 유치원생이던 저는 엄마와 함께 시장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한 잡화점 앞에 멈춰 선 엄마가 물었습니다. “저 장갑 가지고 싶니?” 분홍색 손모아 장갑이었습니다. 손등부에 토끼 봉제인형이 달려 있어 제법 마음에 들었습니다. “응!” 제 대답을 듣고 엄마는 빠르게 물건을 계산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주지 않고 가방에 넣어버리지 뭡니까. “엄마, 장갑 볼래”라고 말하자 “나중에”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카네이션(사진=픽사베이)
 
며칠 뒤, 유치원에 산타 할아버지가 찾아왔습니다. 저를 포함한 아이들은 일제히 환호했습니다. ‘그림책에서만 보던 산타라니!’ 알려진 것과는 다르게 체구가 홀쭉했지만 복장은 익히 아는 그것이었습니다. 산타는 아이들의 이름을 하나씩 호명하며 선물을 나눠줬습니다. 이윽고 제 차례가 되었고, 저는 사탕 모양으로 예쁘게 포장된 선물을 받았습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포장지를 살짝 뜯어보았는데, 익숙한 토끼 얼굴이 보였습니다. 그 순간 저는 산타가 엄마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이후로도 서운함은 쌓여갔습니다. 부모님은 어떤 학부모 행사에도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유치원 재롱잔치에서, 친구를 응원하는 부모들의 애정 어린 눈동자를 바라보며 무대를 내려왔고, 중학교 졸업식에서는 친구의 꽃다발을 빌려 혼자 사진을 찍었습니다. 생활 지도도 부족했습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수학 시간엔 수학 익힘책을 함께 챙겨야 하는 줄 몰랐고, 알림장에 적힌 준비물을 제대로 챙기지 못해 선생님께 크게 혼이 났습니다.
 
가장 아쉬웠던 건 정서적 교류였습니다. 친구 관계에서 느끼는 어려움, 진로에 대한 고민, 세상에 대한 궁금증을 어른과 나누고 싶었습니다. 삶의 방향을 잡을 수 있는 지혜를 듣고 싶었지만 부모님께는 기대하기 어려웠습니다. 제가 공부를 하지 않아도, 게임을 하루 종일 해도, 늦게 귀가해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부모님의 개입이 없었습니다.
 
서운했지만, 이해는 됐습니다. 맞벌이를 하시던 부모님은 줄곧 소규모 사업장에서 일하셨습니다. 재량껏 쉴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기에 학부모 행사에 참여하기 어려우셨을 겁니다. 고강도 육체노동에 긴 근무시간까지 더해져 자녀와 충분히 대화할 여유가 없으셨겠지요. 세 자녀를 먹이고 입히기에도 벅찼을 거라 생각됩니다. 그런 환경 속에서 우리를 키워낸 부모님께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제 서운함은 부모님을 지나 국가에게로 옮겨간 것 같습니다. 어린 시절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지금, 한국 경제 규모는 커졌고 생활수준도 향상되었지만, 가정이 체감하는 삶의 질은 크게 나아지지 않은 듯합니다. 여전히 장시간 노동은 OECD 국가 중 최상위권이고, 맞벌이는 선택이 아니라 사실상 필수가 되었습니다. 소득 격차는 더 벌어졌고, 그에 따라 학벌주의가 고착돼 교육비는 급증했습니다. 이를 감당하기 위해 부모들은 더 많은 시간을 일에 쏟아야 합니다. 양육은 조부모나 사교육에 의존하게 됐습니다.
 
가정의 달 5월입니다. 지금까지 저를 키워준 이 사회와 국가를 향해 마음속 카네이션을 건네 봅니다. 이 나라가 더 따듯하고 책임 있는 ‘좋은 부모’가 되어주기를 바라며, 사랑과 격려의 마음을 가득 담아봅니다. 
 
박혜정 기자 sunright@etomato.com
박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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