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5일(현지 시간) 2주 안에 한국을 상대로 의약품에 대한 품목별 관세를 발표하겠다며 밝히며 의약품 관세에 대한 우려가 재점화되고 있습니다.
만일 한국산 의약품에 관세가 부과되면 미국을 주요 시장으로 공략하고 있는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에게 막대한 타격이 예상됩니다. 특히 바이오시밀러나 국내 개발 신약의 경우 가격 인상에 영향을 많이 받는 품목으로 미국 내 생산시설도 거의 없어 관세가 부과될 경우 심각한 위기에 직면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앞서 지난달 미국이 한국산 상품에 25% 상호관세 부과를 결정한 가운데, 의약품은 상호관세 대상에서 제외하면서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가 일단 안도했으나 품목별 관세 부과 위험은 남아있는 상태죠. 이번에 다시 의약품 관세 이슈가 불거지면서 미국 수출 비중이 큰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는 협회를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새 정부 출범을 앞둔 지금 당장 관세협상을 주도할 컨트롤타워가 없는 것은 심각한 위기 상황입니다. 현 정부에서 할 수 있는 조치라고 해봐야 고작 한국산 의약품 수입이 미국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내용의 의견서를 제출하는 것이 전부죠. 그렇다고 기업에서도 손 놓고 사태를 방관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현 정부의 역할은 차기 정부가 미국과 관세 협상을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상황을 악화시키지 않는 현상 유지선에서 머물러야 할 것입니다. 기업들은 협회를 통해 기민하게 물밑 작전을 세워 미국의 관세 압박에 대응해야 합니다. 한국바이오협회는 미국 정부가 의약품·의약품 원료에 대한 관세 부과 등의 무역 제한 조치를 취하는 것을 자제해달라며 미국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되지 않는 한국 등 동맹국에서 생산된 의약품·의약품 원료는 면제될 수 있도록 요청하는 공식 의견을 미국 상무부에 제출했습니다.
일각에선 미국이 한국에게 의약품 관세를 부과하면 미국 내 약값이 크게 오를 수밖에 없어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실제 적극적인 조치에 나서긴 힘들 거란 관측도 나옵니다. 의약품 가격이 비싼 미국에 한국 업체가 복제 의약품을 공급해 트럼프 대통령이 강조하는 의약품 접근성을 높여주고 있는데 한국산 의약품에 관세 부과는 미국에도 손해라는 논리입니다.
트럼프 행정부 2기 시작 후 공격적 관세 정책을 편 이래 무역 상대국과의 첫 합의 사례인 미영 무역 합의도 주목할 대목입니다. 미국은 지난달 초 영국에 10%의 상호관세를 부과하기로 했는데,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번 합의 후에도 10% 관세율은 유지되고 일부는 면제됐고, 의약품도 관세 면제에 포함됐죠. 관세면제 이유는 시장에 대한 상대국의 접근성을 높인다는 것이였죠.
미국의 관세 압박에 퍼주기식 협상 외엔 대안이 없는 정부를 둔 기업들 처지가 딱하지만, 최악의 경우를 대비한 자구책과 새 정부 출범 이후 본격화될 한미 통상협상에서 제약바이오 산업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이혜현 기자 hyu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