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윤민영 기자] 가계부채 관리는 금융당국의 오랜 숙제입니다. 코로나19 이후 불어난 대출 총량은 경제 전반의 뇌관으로 지목돼 왔고, 연이은 금리 인상과 규제 강화가 반복된 지 오래입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실수요자들이 반복적으로 피해를 호소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시행된 전세대출 보증비율 축소 조치가 대표적입니다.
정부는 오는 7월부터 주택금융공사,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등 보증기관의 전세대출 보증비율을 기존 100%에서 90%로 낮추기로 했습니다. 전세가격 하락과 깡통전세 우려 속에 보증기관의 재무 건전성을 지키고 장기적 리스크를 분산하기 위해서라는 이유입니다. 전세 접근이 쉬우면 갭투자가 활성화돼 결국 집값을 끌어올리니, 전세를 잡으려고 하는 전략도 이해합니다. 하지만 현장의 반응은 냉담합니다. "내 집 마련은 엄두도 안 나는데 전세까지 어렵게 만든다"는 하소연이 쏟아집니다.
특히 타격을 받는 건 청년층과 신혼부부 등 사회초년생들입니다. 전세보증금 전액을 대출로 충당할 수 있던 구조에서 이제는 적어도 10%의 자기자금을 별도로 마련해야 하는데, 빠듯한 월급으로는 감당이 쉽지 않습니다. 특히 집값이 비싼 서울의 경우에는 더 심각합니다.
일부는 울며 겨자 먹기로 고금리 대출을 끌어오고, 일부는 전세 대신 월세로 밀려납니다. 주변 신혼부부들을 보면 전세만큼 보증금을 걸고 거기에 월세까지 충당하는 반전세 형태도 많습니다. 전세가도 높은데, 대출 이자도 월세를 넘어서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정책이 저금리 시절의 과도한 대출을 억제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지만 부작용은 현재의 실수요자에게 집중됩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전세사기 리스크입니다. 정부는 전세사기 피해 방지를 위해 대대적인 단속과 보증보험 가입 권장을 내세워 왔습니다. 하지만 이번 조치로 전세사기의 마지막 안전망이었던 '100% 보증'은 사라졌습니다. 보증비율이 90%로 줄어든 만큼 피해자가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경우 최대 10%는 그대로 손실로 남게 됩니다. 피해액이 수천만~수억 원에 달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계약금 규모에 해당하는 보증비율 10%의 차이가 결코 작지 않습니다.
은행 등 금융권도 부담을 일부 전가받고 있습니다. 보증비율이 낮아지면 대출 심사도 더 까다로워지고, 대출 승인까지 걸리는 시간도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규제의 최종 부담은 실수요자가 떠안는 구조입니다.
물론 가계부채 관리는 중요합니다. 우리 경제의 안정성을 지키기 위해 가계부채 총량을 조절해야 한다는 데 이견은 없습니다. 하지만 실수요자와 투기·과잉수요를 동일선상에 놓고 일괄적으로 조치하는 것은 정교하지 못한 정책입니다. 피해는 가장 취약한 계층에 집중되고, 결국 정책의 명분도 흐려집니다.
대출 규제는 필연적일 수 있지만, 그 대가가 실수요자의 눈물이어서는 안 됩니다. 정부는 '총량 관리'에만 집중해서도 안 됩니다. 가계부채 관리의 목적은 금융시장 안정과 서민 주거안정이 균형을 이뤄야 성립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서울 송파구의 한 공인 중개사에 급매 안내문이 붙어 있다. (사진=뉴시스)
윤민영 기자 min0@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