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 크게 작게 작게 메일
페이스북 트윗터
미드나잇 인 파리
입력 : 2025-05-02 오전 8:44:12
누군가 인생 영화를 묻는다면, 주저 없이 우디 앨런 감독의 ‘미드나잇 인 파리(Midnight in Paris)’를 꼽습니다. 1920년대 ‘잃어버린 세대(Lost generation)’ 시절 파리를 ‘황금 시대(Golden Age)’라 여기는 주인공, 길 펜더가 우연히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떠나 그 시절 전설적인 인물들을 만나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미국서 잘나가는 영화 시나리오 작가였던 길이 소설가로의 전환을 고민하던 시기, 1920년대 파리의 한 사교 클럽에서 낯선 남성과 나눈 다음과 같은 대화였습니다.
“어디서 오셨나요?”
“캘리포니아요”
“스콧 피츠제럴드요, 그쪽은요?”
“…그럼, 동명이인이신가요?”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의 한 장면. 스콧 피츠제럴드(오른쪽)가 길에게 인사를 건네고 있다.(사진=미드나잇 인 파리 캡처)
 
순간의 침묵 뒤, 자신이 평생 동경해온 대문호가 눈앞에 실존하는 인물로 서 있다는 사실에, 길이 느꼈을 전율은 화면 밖 제게도 느껴집니다. 뒤이어 피카소, 헤밍웨이, 거트루드 스타인 등 시대를 대표하는 거장들과 마주할 때마다 길이 얼마나 벅찬 감정을 느꼈을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마치 시간여행을 통해 만난 남성이 “저는 윤동주입니다”라고 말할 때의 느낌이라고 할까요. 이 영화는 그런 상상의 문을 활짝 열어준 작품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낭만적인 환상과는 별개로, 영화는 중요한 메시지를 건넵니다. 길이 그토록 동경했던 과거 역시, 그 시대를 살았던 이들에겐 또 다른 ‘황금시대’가 있었다는 것. 1890년대 ‘벨 에포크(La Belle Époque. 아름다운 시절)’ 시대를 방문한 길은 당대 최고의 화가인 고갱과 드가, 로트렉을 만납니다. 벨 에포크 시대는 경제, 문화가 급속하게 발전했던 태평성대이자 유럽 최고 전성기 시절이라고 평가됩니다. 그럼에도 이들은 길에게 황금시대는 현재가 아닌 르네상스 시대라고 말합니다. 결국 길은 과거에 머무르기를 포기하고 현재를 살아가기로 결심하게 됩니다.
 
‘미드나잇 인 파리’는 과거의 향수에 젖어 있는 우리에게, 그 과거가 사실은 누군가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지금’이라는 것을 상기시키는 우아하고도 로맨틱한 영화입니다. 불확실한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과거는 안전하고 단정된 서사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 시절의 사람들도, 지금의 우리처럼 그 시절을 혼란해하고 불안해했을 겁니다.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난 직후인 1920년대 파리는 특히 그랬을 겁니다.
 
우리 모두에겐 각자만의 ‘파리’가 있습니다. 과거는 언제나 현재보다 더 아름다웠던 것 같고, 지금보다 더 의미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삶은 과거에 멈추는 것이 아닌 현재 진행 중인 불완전한 서사입니다. 지금의 우리도 누군가에게는 황금시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 결국 중요한 건 현재를 살아내는 용기입니다.
 
혹시 지금이 바로 훗날 내가 그리워할 황금시대가 아닐까. 문득 생각했습니다. 지금이 황금시대라는 것을 뒤늦게 깨닫지 않도록, 오늘을 알차게 보내야겠다는 다짐도 함께.
박창욱 기자
SNS 계정 : 메일


- 경제전문 멀티미디어 뉴스통신 뉴스토마토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