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 인공지능(AI), 블록체인. 서로 다른 영역처럼 보이는 이 세 분야는 현재 모두 공통된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바로 ‘법의 부재’와 ‘규제 불확실성’입니다. 신사업으로 각광받고 있음에도, 이들 산업은 제도적 뒷받침 없이 성장해야 하는 게 현실입니다.
플랫폼 산업은 이제 우리의 삶 전반에 스며들었습니다. 소비, 소통, 일상적인 서비스 이용까지 플랫폼을 거치지 않고는 설명할 수 없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플랫폼을 혁신 주체라기보다, 규제 대상으로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여전히 짙습니다. 공정성이나 이용자 보호를 명목으로 다양한 규제 논의가 진행되지만, 정작 플랫폼 산업의 특성과 생태계를 고려한 지원이나 육성 논의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 사이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은 국내 시장 점유율을 빠르게 높여가고 있습니다. 국내 플랫폼 기업들은 불확실한 규제 리스크를 안고 글로벌 경쟁자들과 싸워야 하는 상황입니다.
AI 분야 역시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습니다. 기술은 나날이 발전하지만, 실제로 새로운 AI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AI가 생성한 결과물의 저작권 문제나, 결과물에 대한 책임 소재는 여전히 불명확합니다. 개인정보 보호법과 AI 데이터 학습이 충돌하는 지점 역시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습니다.
정부가 마련한 AI 윤리 가이드라인은 존재하지만, 이는 강제성이 없는 선언적 수준에 그치고 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는 혁신적인 AI 서비스를 출시하는 것 자체가 리스크가 되어 버립니다. 기술 발전 속도에 비해, 이를 뒷받침할 법과 제도는 한참 뒤처져 있습니다.
블록체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다양한 산업에서 블록체인을 활용하려는 시도는 계속되고 있지만, 사업자들은 사업을 시작하기에 앞서 "이걸 해도 괜찮은 걸까?"라는 질문부터 해야 합니다.
코인 발행이나 유통, NFT와 STO(토큰 증권화) 같은 새로운 기술들은 여전히 법적 지위가 모호합니다. 특금법 적용 범위조차 명확히 정리되지 않아, 사업을 추진하는 기업들 입장에서는 불확실성과 위험을 동반합니다. 법의 모호성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의 출현을 가로막고, 결과적으로 해당 산업의 성장 동력을 저해하고 있습니다.
결국 플랫폼, AI, 블록체인 세 분야 모두 빠른 기술 혁신 속도에 비해 법과 제도는 너무 느리게 따라오고 있습니다. 변화하는 시장을 따라잡기는커녕, 과거의 기준에 머물러 있는 규제가 산업의 발목을 잡는 구조입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새로운 산업을 억제하는 규제가 아니라,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하고 위험을 관리할 수 있는 유연한 제도입니다. 혁신을 두려워하기보다, 기술이 만든 새로운 가능성을 어떻게 건강하게 키울 것인지를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