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땅이 꺼지고 있습니다. 차를 타고 다니기가 두렵습니다. 얼마 전 강동구 명일동에서 대형 싱크홀이 발생하며 시민 한 명이 목숨을 잃었죠. 6차선 도로 대부분이 무너졌고, 인도까지 붕괴됐습니다. 깊이는 20m에 달했습니다. 그 밑에는 9호선 연장 터널이 있었죠. 이달 들어 압구정역, 돌곶이역에서도 씽크홀 사고가 이어지며, 지뢰밭 위를 걷는 심정이라는 말까지 나옵니다.
이런 싱크홀 사고가 시민들에게 주는 공포는 단순한 재난 수준을 넘어섭니다. 눈앞의 도로가 예고 없이 꺼지고, 익숙한 일상이 곧 비극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은 '서울은 안전하다'는 전제를 송두리째 흔들죠. 그런데 이 심각한 문제를 두고, 서울시가 '집값이 떨어질 수 있다'는 이유로 위험 지역 정보를 시민에겐 공개하지 않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부동산 가격 하락 우려로 싱크홀 위험지도는 내부 용도로만 쓰인다는 취지입니다.
이게 사실이라면, 시민의 생명보다 집값을 더 중시하는 태도입니다. 서울의 땅이 실제로 꺼지고 있는데, 이 도시의 행정은 아직도 '부동산 리스크'를 더 무서워하는 듯합니다. 부동산 망령에 갇혀있는 셈입니다.
서울시민의 절반은 무주택자입니다. 집이 있는 이들에게는 재산 가치가 중요하겠지만, 집이 없는 나머지 절반에게는 생명과 안전이 더 절박한 문제입니다. 그리고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중요한 가치는 '알 권리'입니다. 싱크홀이 생길 수 있는 위험지대가 있다면, 시민은 이를 인지하고 피할 수 있어야 합니다.
최근 명일동 사고 현장 아래에는 9호선 연장 터널이 있었습니다. 10년 전 석촌지하차도 싱크홀 사고 역시 9호선 공사와 관련이 있었습니다. 전문가들은 터널 굴착이 지하수 흐름을 변화시키고 지반을 약화시키는 등 싱크홀을 유발할 수 있다고 수없이 지적합니다. 명일동은 사고 전 이미 '고위험 지역'으로 평가됐고, 공사 위험성을 경고하는 보고서와 민원도 있었지만, 모두 무시되거나 묻혀버렸습니다.
서울의 지반은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닙니다. 그러나 위험에 대한 정보는 여전히 감춰져 있습니다. 이대로라면 또 다른 '명일동 사고'는 머지않아 현실이 될지도 모릅니다.
다행히 최근 서울시는 시민들의 비판 여론에 대응해 싱크홀 지도 공개를 포함한 ‘지하공간 관리 혁신안’을 발표했습니다. 다만 구체적인 공개 시점은 아직 미정이라, 제대로 된 조치가 이뤄지기 전까지는 시민들이 여전히 불안 속에서 도로를 달려야 할 상황입니다.
서울 강동구 명일동 씽크홀 사고 현장.(사진=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