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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실랑이
입력 : 2025-04-24 오후 6:53:43
서울에서 생활하며 느끼는 가장 큰 불만은 단연코 높은 인구 밀집도입니다. 모든 원망이 사람 수를 향할 정도인데요. 밀집해 있다 보니 부딪히는 일이 많고, 스스로를 지키는 일도 버겁습니다. 비좁은 곳에서 비교 대상도 많아 나를 바로 세우기가 어려운 구조죠. 직접적인 원인이 아닐 때도 있겠지만 서울에서 발생하는 여러 사건사고들에 인구 밀도가 미치는 영향은 적지 않을 것으로 봅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저는 출퇴근길에 참으로 많은 사람들과 마주칩니다. 모두가 비좁은 상황에 놓여있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거칠게 행동합니다. 손으로 사람들을 휘저어 본인이 가야 할 길을 억지로 확보하는가 하면, 타인과 닿았다는 이유로 욕을 하거나 흘겨보는 사람들을 자주 목격합니다. 조금 이름난 곳에 가면 언제나 인파에 시달리고 유행을 따라 가려면 내 시간은 어느 정도 포기해야 합니다. 언제나 '쏠림' 있는 서울이라는 공간에서 치임과 기다림은 함께였습니다.
 
그렇게 지내다보니 서로를 위하는 예쁜 마음을 본 지가 참 오래됐습니다. 살아남아야 하는 미션을 본능적으로 수행하고 있는 이들에게서 여유를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골목길에 한 택시를 발견했습니다. 택시 기사가 트렁크에서 널브러진 짐들을 일이 길에 내려주고 있었습니다. 딱히 거대한 캐리어나 무거운 짐이 아니었기에 '대단한 택시 기사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짐의 소유자인 젊은 승객은 짐 내리는 것을 돕지 않더군요. 자신의 가방에서 무언가를 찾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옆에서 부지런히 짐을 내려주는 기사님 옆에서 말이죠. 저런 베풂을 받으면서 가만히 있다는 게 놀라웠습니다.
 
짐을 다 내릴 동안 이 승객은 여전히 중요한 무언가를 다급하게 찾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가방 속에서 겨우 찾아낸 것은 '현금'이었습니다. 이때부터 반전인데요. 이 승객은 현금을 황급히 찾아내 기사에게 건넸습니다. 그러자 기사는 '뭐 이런 것을 주느냐'는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그러자 승객이 다시 간절하게 현금을 조금 더 가까이 건넸습니다. 이번에도 기사는 어림없었습니다. 손사래까지 치며 쿨한 모습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그러자 승객이 다가갑니다. 들리지는 않았지만, 꼭 받아달라는 모습으로 기사에게 애원하는 것에 가까웠습니다.
 
(이미지=챗GPT)
 
그렇게 한동안 둘의 실랑이가 이어졌습니다. 저는 가던 길을 멈추고 한참을 그들을 바라보았습니다. 최근 보았던 그 어떤 콘텐츠보다 따뜻해서요. 경기도 어려워 돈 한 푼이 귀한데 한 사람은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하기 바빴고, 한 사람은 대가를 바라지 않는 마음을 드러내기 바빴습니다. 따뜻한 마음들이 모이니 또 다른 시너지가 나서 저에게까지 닿았습니다. 어릴적 식당 계산대 앞에서 부모님과 옆집 가족이 서로 계산을 하겠다며 돈을 던지며 하던 실랑이가 오버랩됐습니다. 잊고 살았던 그 실랑이의 주인공, 저도 돼보고 싶어졌습니다.
 
변소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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