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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린 눈으로 살아가기
입력 : 2025-04-17 오후 6:32:03
[뉴스토마토 박혜정 기자] 감정을 수집하는 걸 좋아합니다. 긍정적인 감정도, 부정적인 감정도요. 제가 이해하지 못하던 사람의 입장에 서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입니다.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알게 되면, 앞으로 어떻게 해결해야겠다는 판단이 서 개운한 느낌이 듭니다. 우울함이 왔을 때 일종의 반가운 마음(?)이 든 이유입니다. 우울감에 시달리는 이들을 어떻게 공감해야 할지 몰랐는데, 조금이라도 더 알게 된 것 같아서요. 작은 경험을 확장하여 선인에게도 악인에게도 이입해봅니다. 그렇게 조금씩 세상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사진=챗 GPT 생성 이미지)
 
물론 공감하는 일은 마냥 신나지만은 않습니다. 가장 괴로운 때는 공감의 대상에서 제 모습을 볼 때입니다. 오랫동안 스스로가 피지배계층이라고 생각했습나다. 세계는 지배와 피지배로 또렷하게 구분된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못 보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을 때 혼란스러웠습니다. 제가 쉽게 쓰고 버리는 옷이 개발도상국 저임 노동의 산물이라는 걸 알았을 때, 그들이 끝내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걸 알았을 때, 송아지의 코를 잘라 어미소의 젖을 먹지 못하게 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 우유를 나 같은 인간들이 먹는다는 것을 알았을 때, 암컷 돼지가 몸집보다 비좁은 번식 틀에 갇혀 앉고 일어서다 죽는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 공장식 축산으로 싼 값에 고기를 먹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당혹스러웠습니다.
 
제 또한 누군가를 착취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3년간 채식을 하기도 했습니다. 정치적으로 올바른 소비를 하려 애쓰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많은 것을 놓고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신념을 옮기는 과정에서 상처도 많이 받고, 스스로도 편하고 싶어 흐린 눈으로 살아가기를 택한 겁니다. 다들 이렇게 살겠지 하면서. 내가 누군가를 깔고 누워있다는 것을 알아도, 안온해서 모른 척하는. 그때부터 누군가를 쉽게 욕하기 부담스러웠습니다. 나조차 그러한 존재라서요.
 
한강의 채식주의자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주인공은 기괴한 꿈을 꾸고 채식주의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곧 본인이 식물이 되기를 선택합니다. 물과 햇빛, 무생물만 취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저는 주인공이 폭력성의 기제를 깨닫고 해탈해 버린 게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만약 한강 작가를 만난다면 묻고 싶었습니다. 현실을 사는 인간으로 극단적 실천말고 다른방법은 없느냐고. 그러다 문득 깨달았습니다. 비록 흐린 눈으로 살더라도 눈을 감고 살지 않으면 된다고. 예전처럼 뜨겁지는 못해도 흐린 눈으로만 봐야 보이는 것도 있다고.
 
박혜정 기자 sunright@etomato.com
박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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