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맨 만큼 내 땅이다."
최근 저녁자리에서 한 친구가 한 말입니다. 직장 생활 10년차, 조직 생활은 여전히 힘들고 인생은 언제쯤 편해지냐는 푸념 속에 나온 말이었습니다. 듣자마자 울컥했습니다. 당시엔 이유를 몰랐습니다. 집에 가며 생각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취업 전까지 겪었던 일련의 과정들이 영화처럼 스쳤습니다.
2024년 11월30일 서울 강서구 발산근린공원에서 열린 서남권 캠퍼스타운과 함께하는 '청년 일 탐구회’를 찾은 시민들이 적성 검사 및 진로 상담을 받고 있다.(사진=뉴시스)
고등학교 시절엔, 패션업계의 화려함과 럭셔리함에 홀려 패션 에디터를 꿈꿨습니다. 유명 잡지 <보그 코리아>를 발행하는 두산매거진에도 지원했지만 낙방했습니다. 에디터는 안 되겠다 싶어 다른 밥벌이를 찾아 나섰습니다. 인문계열을 전공했지만 연구자의 길로 가기도 어려웠습니다.
끝내 어찌저찌 기자가 되었지만, 기자라는 이름을 얻기까지 걸린 시간은 적지 않았습니다. 그 시절을 허송세월로 여길 때도 있었습니다. 지금에서야 그 날들이 추억으로 남았지만, 취준 시절엔 몰랐습니다. 또래 친구들이 학교를 졸업하고 일찌감치 직장에 들어가 받은 월급으로 부모님께 용돈을 드리고 있을 때, 여전히 진로를 더듬었던 저의 모습을 스스로 부끄럽게 여겼던 것 같습니다.
참 애썼던 그 시간을 내 자신도 알아주지 못했다는 걸 뒤늦게 알았습니다. 친구의 그 말은 ‘그 시간들마저 오래 일궈온 너의 값진 땅이다’라는 위로가 되었습니다. 한국사회는 실패에 관대하지 않습니다. 헤매는 것을 실패로 여기는 분위기입니다. 하지만 헤매는 것이 창피한 일이 아니고, 헤메는 일 없이 원하는 길을 단번에 갈 수 있는 사람도 없다고 믿습니다. 지금 어디선가 진로를 찾기 위해, 회사를 그만두고 인생 2막을 찾는,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모든 이들에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헤맨 만큼 내 땅이다.’
오세은 기자 os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