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현 국민의힘 의원을 비롯한 소속 의원들이 지난 1월 6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 관저 앞에 모인 취재진에게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뉴시스)
영화 <2012>와 <투모로우>. 인류의 멸망을 그린 재난 영화입니다. 재난 영화의 시작은 대게 '징조'를 보여주는 것이죠. 대부분의 소설도 마찬가지입니다. 사건의 앞에는 수많은 시그널이 존재합니다. 단지 소설 속 등장인물들이 그 시그널을 무시하고 지나갈 뿐입니다.
우리가 지금 대한민국이라는 제목의 영화 혹은 소설 속에 있다면 수많은 시그널을 무시하고 있는 현장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소설 속에서 보여준 징조의 시작은 2016년 겨울이었습니다. 권력의 뒤에 아른거리던 '십상시'의 존재는 시작에 불과했고, 민간인의 국정농단은 탄핵의 단초가 됐습니다. 사건의 시작이었습니다.
보수 진영의 대통령이 탄핵되면서, 변화도 엿보였습니다. 하지만 소설과 영화가 늘 그렇듯 두번째 클라이막스를 위해서는 그 변화가 완벽하지 않습니다. 변화가 실패로 끝나야 두번째 클라이막스의 소재가 되기 때문이죠.
다시 등장한 보수 진영의 대통령. 시작부터 불안함이 컸지만, 사람들은 믿었습니다. 하지만 이른바 명태균 게이트가 터졌고, 12·3 비상계엄으로 이어졌습니다. 소설 속 소재라 해도 믿을 수 없는 수준의 공상과학 그 자체였습니다.
두번째 클라이막스는 지난 4일 막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이라는 소설은 마지막 클라이막스를 향하고 있습니다. 3막의 제목은 '보수의 몰락'이자 '대한민국의 몰락'입니다.
두 번의 탄핵을 경험한 보수 진영은 변화의 동력을 상실했습니다. 6·3 대선을 향한 보수의 얼굴들이 그렇습니다. 그나마 건강한 보수를 상징한 오세훈 서울시장과 유승민 전 의원은 보수의 대표 얼굴로 나서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 자리를 '극우'가 차지하고 있으며, 당권과 지방선거를 위한 야욕의 그림자가 아른거립니다.
총선에서의 패배에서 이어진 비상계엄과 조기대선. 이제 대선에서의 패배와 지방선거의 패배가 예고편에 등장합니다. 3막의 끝을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지을 것이냐, 새드엔딩으로 마무리 지을 것이냐는 온전히 보수 세력에게 달렸습니다.
흔히들 보수와 진보의 균형을 이야기할 때 날개를 거론합니다. 양쪽 날개가 균형을 맞춰 날아야 올곧게 나아갈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지금 한 쪽 날개가 회복 불가 상태에 처했습니다. 대한민국의 몰락으로 이어질 수 있는 상태인 셈입니다.
이미 이번 대선에서의 회복은 불가능한 것 같습니다. 대선 패배 이후 당권 경쟁이 유일한 기회가 될 거라 봅니다. 보수를 회복시켜야, 대한민국도 정상궤도에 다시 오를 수 있습니다.
한동인 기자 bbha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