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제법 내리던 토요일 오전 서울 시내 한 사진 전시회를 찾았습니다. 세계 여러 나라의 풍경을 담은 작품이 전시회였습니다. 미뤄뒀던 약속 대신 조용히 나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었습니다. 주말이긴 했지만 비도 오고 아침 시간이었기에 한산할 것이라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전시장 앞에 길게 늘어선 우산들과 예매 줄이 있었습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전시장 안으로 들어가 있었고 내부는 제법 북적였습니다. 시끌벅적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조용하지도 않았습니다.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 유독 오랜 시간 한 장의 사진 앞에 멈춰 있는 사람, 조심스럽게 휴대전화로 작품을 찍는 사람들까지. 모두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 시간을 오롯이 느끼고자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이번 전시는 세계 여러 도시와 자연 풍경을 담은 사진들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해 질 무렵의 골목, 흐릿한 역광 속 시장 풍경, 창밖으로 바다가 보이는 호텔 방의 창문까지. 현실과는 거리가 먼 장면들이 오히려 더 깊은 몰입감을 주었습니다. 그 이국적인 풍경들 앞에서는 나 역시 잠시 그곳을 걷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당장 떠날 수는 없어도 마음만이라도 다녀오고 싶은 장소들이 있습니다. 보고 싶은 풍경이 있고, 그 속에 있는 내가 그리운 순간도 있습니다. 사진은 그런 감정을 말없이 대신해 줍니다. 특별한 해설도 필요 없고 정답도 없습니다. 그저 한 장의 이미지 앞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지금의 나와 조용히 연결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꼭 예술 감상을 위해 전시장을 찾는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요즘 전시회는 단순한 '작품 감상'을 넘어 일상과 감정을 잠시 끊어내고 다시 정리할 수 있는 공간이 돼가고 있습니다. 매일 반복되는 출근과 일상 속에서 감정은 종종 미뤄지고 뒤로 밀려나기 마련입니다. 그 가운데 전시회는 혼자여도 어색하지 않고 아무 말 없이 감정을 꺼내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장소로 남아 있습니다.
사진 앞에 선 사람들의 표정은 저마다 달랐지만 마음속 바람은 비슷했을 것입니다. 지금 당장은 떠날 수 없어도 보고는 싶었다는 것. 그 감정이 전시장 안을 조용히 채우고 있었습니다.
감정도 때로는 여행이 될 수 있습니다. 사진 한 장 앞에 멈춰 선 그 짧은 순간, 우리는 어쩌면 잠시 다녀온 거 아닐까요?
그라운시 시소 센드럴에서 '우연히 웨스 앤더슨 2' 전시를 개최했다.(사진=뉴스토마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