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コ. 일본어 가타카나)자형 카운터가 있는 가게를 코노지 술집이라고 한다. 앉으면 좌우 대각선에 사람들이 면면이 늘어선다. 상석도 말석도 없는 평등한 자리. 말하자면 그곳은 사람과 사람이 교제하는 무대”
일본 드라마 '오늘 밤은 코노지에서' 에 등장한 코노지 '다이리키 주조'. (사진='오늘 밤은 코노지에서' 캡처)
2020년 방영된 <오늘 밤은 코노지에서>라는 일본 드라마 오프닝 멘트입니다. 바쁜 일상을 보낸 주인공이 코노지에 들러 시원한 맥주 한 잔과 함께 하루를 마무리하는 모습을 보며 편안함을 넘어 아늑함까지 느꼈더랬습니다. <오늘 밤은~>에 마음이 동해 지난해 11월, 무작정 일본 도쿄로 향했습니다. 쇼와시대에서나 볼 법한 허름하고 낡은 공간. 각자의 사연을 안고 그곳에 들어선 손님들이 초면에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미슐랭 가이드에서는 별 3개(3스타) 등급을 받은 음식점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오직 이 음식점을 방문하기 위한 목적만으로도 해당 지역에 여행을 떠날 가치가 있다." 제게 코노지는 그런 존재였습니다.
제가 방문했던 코노지는 모두 도쿄 중심가로부터 꽤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신주쿠를 기준으로 최소 40분 이상 가야 했습니다. 물론 중심가에도 있지만, 그런 곳들은 너무 번잡한 거 같아서 외곽을 택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코노지 한 곳을 꼽자면, 1인 화로구이를 해 먹을 수 있는 ‘다이리키 주조’라는 곳이었습니다. 가나마치역 근처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구글맵 기준으로 신주쿠에서 지하철로 50분가량 걸립니다.
가게에 들어서자, 나이 지긋한 주인아주머니께서 친절히 맞아주셨습니다. 저는 카운터석에 앉아 음식을 주문한 뒤 “일본 드라마를 보고 한국에서 여기까지 왔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사장님은 깜짝 놀라며 크게 반가워했습니다. 본인은 재일교포 2세며, 한국인이 이 가게에 온 건 당신이 처음이라고 어설픈 한국말로 떠듬떠듬 말했습니다. 도쿄에서 한국인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을 발견한 기쁨이란!
가게 단골들도 저를 신기하게 바라봤습니다. 그들의 얼굴에는 ‘한국인이 왜 여기까지?’라는 질문이 쓰여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손님들은 제게 금방 친근하게 다가왔습니다. 50대로 보이는 남자 손님은 제가 부산 출신이라고 하자 본인이 부산에서 일한 적 있다며 뜬금없이 ‘부산 갈매기’를 목청껏 불러댔습니다. 한 커플은 ‘한국을 좋아한다’며 건배를 제안했습니다. 젊은 직장인 손님은 제게 메뉴를 추천해 준 후 맥주 한 병을 대접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쉬이 볼 수 없는 풍경이라 참으로 신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참 따뜻했습니다.
8박9일 여행 동안 코노지만 다섯 군데를 더 들렀습니다. 코노지에 방문한 날만큼은 참 즐겁게 하루를 마무리했던 기억이 납니다. 한 달 이상 병원 치료를 받아 심신이 지쳐있던 제게, 코노지는 자그마한 위로를 건네는 곳이었습니다. 낯선 곳에서 느끼는 편안함은 생각 이상으로 특별했습니다.
박창욱 기자 pbtkd@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