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의 선고로 국가적 혼란은 일단락됐지만 대통령 권력을 둘러싼 파괴적 갈등의 소지는 상존한다. 극단적 대결 정치를 끝내자는 정치개혁 요구, 국민의 삶을 바꾸는 민주주의를 하자는 사회개혁 요구가 개헌으로 집약되고 있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사랑재에서 열린 개헌관련 긴급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헌법재판소가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씨의 탄핵 선고를 내린 지 이틀 만에 우원식 국회의장이 기자회견을 열고 '개헌'을 언급했습니다. 주요 내용은 정치개혁을 요구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높아져 '개헌'을 하기 위한 적기라는 점을 언급했는데요.
우 의장의 기자회견을 보니 8년 전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바로 전직 대통령인 박근혜씨가 파면되자 정세균 당시 국회의장은 '국민 통합과 개헌'을 정치권 화두로 던졌습니다. 그 결과 일주일도 가지 못할 '반짝' 주목만 받고 끝이 났는데요.
그는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해 힘을 모아야 한다"며 "이번 탄핵 사태는 대통령 개인과 측근의 문제를 넘어 한국 정치가 안고 있는 여러 복합적인 문제의 결과물"이라고 풀이했습니다.
그러면서 정 의장은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체제 문제, 허약한 정당정치, 당리당략을 앞세운 비타협주의와 승자독식 등 정치권이 묵인해 온 제도와 관습이 적폐를 키우는 온상이 되어왔음을 부정하기 어렵다"고 지적하며 "우리 정치가 탄핵되었다는 심정으로 정치개혁에 매진해 나가야 한다"고 개헌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1987년 개헌 이후 탄핵으로 인해 불명예 퇴장을 한 전직 대통령은 2명이 있긴 하지만, 그 외 다른 대통령들은 임기를 모두 채우며 위법을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전직 대통령 이명박씨는 특정죄가중처벌등에 관한 법률위반(뇌물) 사건으로 임기가 만료된 후 구속되기도 했다.) 그렇다면 제도의 문제라기보다 사람의 문제가 아닌가 다시 한 번 돌아봐야 합니다.
또 우 의장이 내놓은 방안에는 허점이 있습니다. 대통령 투표와 함께 국민투표를 하자는 것인데요. 아직 국민투표법은 사전투표를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이를 동시에 시행한다면 국민의 여론을 제대로 반영할 수 없다는 문제점도 지적됩니다. 더불어 핵심은 '개헌'에 대한 논의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87체제'로 개헌했을 때도 겨우 '직선제'만 허용했을 뿐 충분한 논의는 결여됐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번에도 상황은 비슷합니다. 헌법재판소의 긴 탄핵 심리로 인해 세상은 멈췄고, 정치권도 사실상 정지 상태였습니다. 또 그동안 민주당과 시민단체가 줄곳 주장했던 '5·18 정신을 헌법전문 수록하는 것'은 사회적 합의를 이끌지 못했는데요.
한때 윤석열씨가 구두 수용을 하긴 했지만, '극우화'된 국민의힘에서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그렇다 보니 일각에서는 자당에서 배출한 대통령의 '계엄'을 지우기 위해 '개헌' 카드를 꺼낸 것이 아닌가라며 의구심을 지우지 못하고 있는데요. 대한민국 민주공화국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개헌은 당장 해치우는 숙제가 아니라 충분한 숙의를 거쳐 논의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정세균 전 국회의장이 지난해 12월 31일 서울 여의도 한 식당에서 비상시국 해법과 개헌 등을 논의하기 위해 열린 전 국회의장·전 국무총리·전 당 대표 초청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진하 기자 jh311@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