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시위는 이제 구호 대신 굿즈로 말합니다.
아이돌 콘서트장이 아니라 시위 현장에서입니다. 윤석열 씨 탄핵 국면의 풍경은 외신도 주목했습니다. 성조기와 태극기 사이, 형형색색 아이돌 응원봉이 등장했습니다. 깃발에는 '내란죄 사형'이라는 문구가 적혔고 집회 현장에는 인형 뽑기 이벤트까지 열렸습니다. 굿즈는 진화했고 '에디션'이라는 이름까지 생겼습니다.
2024년 12월 3일 국회에서 윤석열 씨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자 언론사들은 호외를 발행했습니다. 종이 한 장의 신문은 MZ세대에게 희귀템이 됐습니다. "역사적인 날 기록한 호외 구할 방법 없을까요." SNS에는 이런 글이 올라왔고 "12월 3일 계엄부터 4월 4일 탄핵까지, 신문 호외 모두 합친 에디션 3만 3000원에 팔아요"라는 거래 게시물도 등장했습니다.
2025년 4월 4일, 헌법재판소가 탄핵을 인용하자 호외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었습니다. 4일부터 6일까지 중고 거래 플랫폼에는 관련 호외가 1000~3000원 수준에 다수 올라왔습니다. 특히 7개 언론사의 호외 11부를 모두 모은 '7종 11부 총모음'과 같은 한정판은 3만원이 넘는 가격에 거래되기도 했습니다.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현장 배포 호외를 구하지 못해 중고로 배송을 신청했습니다. 디지털 시대에도 종이 호외 한 장이 주는 물성은 여전히 강력했습니다. 누군가는 호외를 들고 인증샷을 찍고 누군가는 지하철 역사에서 배포 장소를 공유했습니다.
결혼식 답례품에서 착안한 '탄핵 수건'도 등장했습니다. 수건에는 "2024.12.03 국회 탄핵소추 가결" 같은 날짜가 적혀 있고 체포 날짜 버전도 따로 있습니다. 수건 하나로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는 방식이 요즘 세대의 언어가 되었습니다.
한편 탄핵에 반대하는 진영도 굿즈로 응수했습니다. 아이돌 응원봉 대신 경광봉, 깃발 대신 성조기, 복장은 빨간색 티셔츠입니다. 특히 윤석열 씨 구속 후 등장한 티셔츠 문구가 눈에 띄었습니다.
"0010 당신과 함께!"
여기서 '0010'은 구치소 수감번호로 알려졌으며 '당신'은 윤석열 씨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석방 당시 모습을 박은 티셔츠까지 등장하며 양 진영의 굿즈 전쟁은 치열했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어떤 굿즈는 쏟아지고 어떤 굿즈는 버려졌다는 점입니다. 윤석열 씨의 재임 시절 배포됐던 '윤석열 시계'는 탄핵 인용 직후 중고거래 플랫폼에 무더기로 올라왔습니다. 4일 오전 11시 22분 헌재 결정 직후부터 5일 오후까지 하루 사이 20건 이상 매물이 새로 등록됐습니다. 1년간 하루 평균 1.4건 수준이었던 매물 수가 이틀 만에 7배 가까이 증가한 것입니다. "가격 제시만 하면 바로 판매합니다", "정가보다 싸게 넘깁니다"라는 문구도 쉽게 발견됐습니다. 20만원대였던 시계는 현재 8만~10만원대로 하락했습니다.
정치적 상징의 가치가 어떻게 바뀌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굿즈 열풍은 선고 당일에도 절정을 맞았습니다. 2025년 4월 4일,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 선고를 앞두고 가장 주목받은 아이템은 다름 아닌 '헌재 방청권'이었습니다. 20명만 방청이 가능하다는 사실에 수만 명이 몰리며 헌재 홈페이지는 일시적으로 마비되기도 했습니다. "로또보다 어렵다", "전 국민 티케팅 하는 줄 알았다", "이럴 거면 체조경기장에서 하지 그랬냐"는 반응이 줄을 이었습니다.
한 장의 수건, 한 줄의 문구, 하나의 방청권이 지금의 민주주의를 기억하는 방식이 되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파면된 4일 오후 서울 중구 시청역 인근에서 시민들이 윤 대통령 파면 관련 호외를 가져가고 있다.(사진=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