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경북 의성군 단촌면 관덕리 한 마늘밭에서 흙덮기 작업을 하는 농부 뒤로 산불에 잿빛으로 변한 산이 보이고 있다.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김태은 기자] 대학을 졸업하기 직전 인구감소지역에서 3개월 간 인턴기자 생활을 한 적이 있습니다. 산 좋고 물 좋은 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난 감사한 추억으로 남은 시간입니다. 여러가지 일이 있었는데요. 유독 산에서 만난 사람들이 기억에 남습니다.
버스가 다니지 않는 산 속에 사는 취재원을 만나러 가야겠다며 고물차로 1200m가 넘는 민주지산을 넘다 결국 그 차는 카센터에 맡겨졌습니다. 대신 귀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곳에 머무는 동안 유독 마음을 썼던 마을 할머니들의 한글학교도 산 중턱에 있었습니다.
이번 대형산불 소식에 유독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이유입니다. 산 옆에 사는 사람이 적지 않은 걸 알기에 '다들 무사하실까' 걱정이 됐습니다.
영남권을 중심으로 발생한 대형 산불이 9일 만에 가까스로 꺼졌습니다. 이번 의성 산불은 사람이 달리는 것보다 빠른 속도인 시간당 8.2km로 확산했습니다. 불이 달리는 수준으로 퍼졌다는 겁니다.
최악의 산불로 발생한 사상자는 사망 31명, 중상 8명, 경상 36명 등 75명으로 집계됐습니다. 지난 21일부터 30일까지 중대형 산불이 발생한 전국 11개 지역의 산불 영향구역은 총 4만8238.61ha에 달합니다. 이는 축구장 6만7561개에 달하는 면적입니다.
이번 산불은 지방 고령층의 현주소를 고스란히 드러냈습니다. 산불 피해가 심각한 경북 지역의 지난해 고령인구는 24.7%로, 전남(26.2%)에 이어 전국에서 고령화가 가장 많이 진행된 지역입니다. 주민 다수가 긴급재난 문자를 받아도 무용지물이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특히 이번 재난으로 제대로 된 대피 매뉴얼이 없었다는 사실이 발견됐습니다. 행정안전부는 안전취약계층의 재난 피해현황을 별도로 관리하지 않았고, 이들을 위한 재난 위기관리 매뉴얼도 없었습니다. 지자체 차원의 피난 지원도 사실상 없었습니다. 현행 재난안전법엔 대피명령 등에 대한 규정은 있지만, 안전취약계층의 피난 계획 등과 관련한 지자체 역할을 구체적으로 명시한 내용은 없기 때문입니다.
정부가 이번 재난을 계기로 '초고속 산불 대피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매뉴얼 마련에 착수한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기후 변화로 산불 확산 속도가 빨라진 가운데, 고령화 비율이 높은 지역에서는 재난 대응 속도가 느리다는 판단에 따라 신속 대응을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섰습니다. 정부는 재난 전달체계와 예·경보 시스템 등을 총체적으로 재정비한다는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번에도 우리는 재난이 일어난 뒤에야 초대형·초고속 산불에서 살아남을 대피 매뉴얼에 대한 질문을 던졌고, 해답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기후 변화로 산불의 규모는 커지고 속도는 더 빨라졌으나, 대응 방안은 부재했습니다. 인구감소지역의 급격한 고령화는 현실이었으나, 여전히 예방진화대원의 평균 나이는 환갑이 넘은 상황이었습니다. 알면서 방치한 대가는 처참했습니다. 더이상 사람을 잃고 나서야 성찰하기 시작하는 이 사이클이 반복되지 않길 바랍니다.
김태은 기자 xxt197@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