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과 교역하는 모든 나라의 관세율에 맞춰 관세를 부과하는 상호관세 행정명령에 서명했습니다. 교역 상대국의 관세는 물론 비관세 장벽까지 감안해 이르면 4월2일부터 상호관세를 부과한다는 방침입니다. 상호관세는 교역 상대국의 관세율에 맞춰 비슷한 수준의 관세를 부과하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대응 방식으로 각국의 산업계는 난데없는 관세 폭탄에 피해를 우려하며 대책마련에 나서고 있죠.
결국 우려했던대로 부가가치세나 환율까지 비관세 장벽으로 간주해 대미 무역흑자국에 관세를 물리겠다는 입장을 관철한 것입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대부분 미국산 제품에 무관세를 적용하는 우리나라도 상호관세 타깃이 됐습니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FTA를 체결해 대부분의 제품에 관세가 없지만 대미 무역 흑자를 이유로 트럼프 행정부가 4월부터 반도체, 자동차, 철강 등 수출 주력 품목에 상호 관세를 부과할 가능성이 높아진 것입니다.
현재로서는 수입산 의약품에도 관세를 부과할 가능성이 높아지자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가 긴장하며 다양한 대응 전략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세계 최대 의약품 시장인 미국에 공을 들여온 만큼, 관세 정책이 시행되면 업계에 상당한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입니다.
구체적인 의약품 관세 부과 계획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지만, 시행될 경우 현지 시장에 진출한 국내 기업에 상당한 타격이 예상됩니다. 지난 10여년간 국내 제약 바이오 기업의 미국 의약품 수출 규모는 꾸준히 증가했습니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국산 의약품의 미국 수출액은 13억5900만 달러(약 1조9700억원)로 집계됐습니다. 2015년 3300만 달러(약 470억원)에 불과했던 수출액은 2019년 4억3500만 달러(약 6310억원)로 4년 만에 13배 이상 증가했죠. 2021년에는 10억 달러(약 1조4300억원)를 돌파했습니다.
무관용 관세정책이 의약품에도 시행된다면 가장 큰 피해가 예상되는 곳은 바이오시밀러 위탁개발생산(CDMO) 기업입니다. 특히 삼성바이오에피스와 셀트리온은 미국식품의약국(FDA)에서 허가받은 바이오시밀러 의약품을 보유하고 있죠. 바이오시밀러 의약품의 최대 경쟁력은 오리지널 의약품 대비 낮은 가격인데, 관세 폭탄을 맞는다면 약가 상승이 불가피해 현지 시장에서 경쟁력이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은 1994년 체결된 세계무역기구(WTO) 의약품 협정에 따라 의약품, 원료 의약품에 대한 관세를 면제해왔습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의약품 품목에 대해서는 상호 관세면제가 적용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최악의 경우를 대비는 해야하는 상황입니다.
당장 대처 가능한 방법은 현지에서 유통 중인 제품의 재고를 충분히 확보하고 최대한 길게 추가 수입 없이도 현지 공급이 가능하도록 조치를 취하는 정도일 것입니다. 중기적으로는 관세 부담이 적은 원료의약품(DS) 수출에 집중하고 미국 내 생산시설을 인수하거나 현지 공장을 설립하는 조치를 취해야 할 것입니다.
이혜현 기자 hyu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