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혜정 인턴기자] A를 만나기 전까지 나는 F와 T의 간극이 그렇게 극심한 것인지 알지 못했다. 내 MBTI는 모든 영역에서 중간 비율이기 때문에 그때까지 성격 요소 간 격차를 심히 느낀 적은 없었다. 그렇기에 A를 만나고 그녀를 알아가는 과정은 내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서울일러스트레이션페어vol.15를 찾은 관람객들이 부스를 둘러보고 있다(사진=뉴시스)
4년 전 나는 A와 영어 회화 모임에서 만났다. 뒤풀이에 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던 중, 여느 때처럼 MBTI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T와 F 사이 와리가리하는 F라고 스스로를 소개했다. 그때 그녀의 MBTI를 알게 됐다. T가 91%라고. 나의 선입견에 비추어 T 90% 이상은 냉소적이고. 붙임성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녀는 그렇지는 않았다. 그녀의 첫인상은 적당히 차분하고, 무난히 사교성이 좋은 사람이었다. 의외라고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더 알게 된 것은 그녀가 나와 같은 동네에 살고, 둘 다 백수 신세였다는 것이다. 매번 집에 같이 가니 우리는 조금씩 친해졌고, 어느새 자주 카페에 가 함께 공부하는 사이가 됐다.
서로 고민을 나누었을 때부터, 나는 본격적으로 우리의 간극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내가 심리적 괴로움을 토로하면 A는 해결책을 제시해줬다. A가 고민을 얘기하면 나는 공감을 해줬다. 그럴 때마다 우리 머리 위에는 말풍선이 그려지는 것 같았다. 내 입장에선 공감 없이 해결책만 툭툭 던지니 A가 ‘너는 이것도 못하니? 이렇게 하면 해결되잖아’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A 앞에서 나는 못난 어린이가 되는 것 같았다. 내가 공감을 했을 때 A의 표정에는 ‘그래서? 왜 나에게 그런 말을 하는거지?’라는 듯 따분함이 어려있었다. 그때 알게 됐다. 우리가 가까이 살고, 자주 만나는, 물리적으로 가까운 관계일지언정, 우리 사이에는 광활한 우주가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그렇게 상처받기를 반복하고, 솔직히 이야기를 나눠볼까 하다가도 공감을 받지 못할 것 같아 포기했다. 불편함이 커졌을 때 A와 연락을 줄이려고도 해봤다. 그러나 A에게 매번 먼저 연락이 왔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어느날 마음먹고 속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역시 A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 후 여러 시행착오가 있었고, 우리는 ‘선 공감, 후 해결책’이라는 공식을 만들었다. 처음에는 엎드려 절받는 식으로 기계적 공감을 받았다. 그래서 소소하게 다투기도 했다. 친해진다는 것은 칼을 들고 서로의 몸에 상처를 입힌 후 함께 치유하는 것이라 했던가. 친밀통(?)을 겪은 우리는 서로에 맞게 조각되었다. 처음에는 억지로 꿰맞췄을지 몰라도 이제 서로에게 진심을 느낀다.
MBTI 검사 사이트 16 personalities에 따르면 대한민국에서 T와 F의 비율은 각 39.61%, 60.39%라고 한다. 요새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나는 T(또는 F)가 아니면 연애하지 않을 것이다.’, ‘T(또는 F)는 거른다’라는 말들이 있다. 흥미로운 것은 심리학계에서는 MBTI를 유사과학이라고 치부하고 학문적으로 배우지 않는다. 환경에 따라 변동성이 너무 심하기 때문이다. A도 최근 MBTI를 검사해보니 T가 72%가 됐다고 한다. 나도 재검사해보니 T가 나왔다. 뻔한 말이지만 MBTI는 서로를 배척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 현재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 만들어진 검사라고 한다. 서로 단정짓거나, 스스로의 미성숙함 덮어버리기엔 우리의 잠재력은 너무나 크다.
박혜정 인턴기자 sunright@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