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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 겁박
입력 : 2025-01-24 오후 6:05:21
설 명절에 부모님과 만나 정답게 근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부모님의 질문에 답하다보니 올 들어 제가 벌써 두 곳의 기업에 타격을 줬더군요. 문제를 발견해서 기사를 썼고, 해당 제품은 이내 판매 중단에 이르렀습니다. 이야기를 들은 부모님은 심각한 표정을 지으시더니 걱정을 늘어놓으셨습니다.
 
(이미지=챗GPT)
 
제겐 그저 A4 한 장 정도의 글이지만 기업들에게 줄 타격은 어마무시하다고 말입니다. 대기업이 아니고선 그것을 감당해낼 여력이 없어서 자칫 기업을 망하게 할 수 있다고 우려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옳지 못한 내용을 발견하면 기업에게 시정하라고 시한을 주고 그래도 바뀌지 않으면 그때 기사를 작성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좋은 기사를 통해 기업들의 사기를 올려주는 것도 필요하다고 당부하셨습니다.
 
기사를 쓰는 제 마음도 편치는 않았습니다. 저는 우리나라 중견, 중소기업이 잘 되기를 늘 바라는 사람입니다. 특히 저와 마주하는 기업 홍보팀들이 속한 그 기업들이 좋은 실적을 내면 같이 기쁩니다. 게다가 저는 원래 관계를 중시합니다. 저와 직접적으로 대면하는 사람들이 고통스러운 모습을 보는 것이 사실 싫습니다. 그들에게 저는 산업 동향을 묻고 자료도 요청하고 설명도 듣습니다. 업무 미팅을 진행하면서 맛있는 식사도 하고 사담도 더합니다. 그런 관계에서 부정 기사가 나오면 홍보팀들에게는 비상입니다. 마음이 가까운 사람이라면 더욱 쉽지 않습니다.
 
별일 아니길, 풍문이길 바라는 마음을 가진 채로 취재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어렵지 않게 기업의 불공정한 행위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 의견만 듣고 넘어갔으면 아무런 기사도 나올 수 없었을 것입니다. 확인하는 차원에서 직접 취재를 해보면서 꼼꼼하게 살피다보니 알게 된 내용이었습니다. 물론 이 사실을 기업 측에 문의했을 때 처음에는 다들 대수롭지 않은 반응이었습니다.
 
기사가 나가자 얘기가 달라졌습니다. 한 기업 홍보팀은 제게 '너무한다', '죽겠다', '이러는 거 아니지' 등으로 기사를 내지 말아달라고 했습니다. 부탁이 아니라 겁박에 가까웠습니다. 기사를 막는 논리는 없었습니다. 관계를 담보로 한 겁박에 불과했습니다. 애써 어차피 누군가는 확인할 사안이고 독자들이 알 필요가 있는 정보라고 응수해봤지만 소용없었습니다. 후에 제 기사를 보고 다른 기자들이 추가 취재를 이어갔는데요. 들리는 소문에 제 실명을 대고 원망을 빙자한 욕이 홍보팀, 홍보대행사 입에서 흘러나왔다고 합니다.
 
그동안 함께했던 식사 시간이 무색해졌습니다. 기업도 똑같이 생각하겠지요. 제가 억지를 부리거나 과장을 했다면 저런 겁박을 들어도 아무렇지 않았겠죠. 저는 과장보다는 지금 있는 사실에만 집중했습니다. 부드러운 관계를 지향했던 것이 오히려 독이 된 기분이었습니다. 강경하게 나가는 이들은 저런 겁박을 거의 듣지 못하더군요. 저는 그래도 마음이 쓰여 홍보팀에 전화를 걸어 도움 되지 않을지도 모를 이야기를 드리기도 했습니다. 그동안 그랬듯, 앞으로도 같은 상황이 오면 저는 같은 선택을 하겠지요. 그땐 또 어떤 소리를 듣게 될까요. 불편한 동행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변소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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